![[결단의 순간들]김영만 한빛소프트 사장(3)](https://img.etnews.com/photonews/0510/051010020443b.jpg)
(3)100억원짜리 학습
실시간 전략게임의 대명사 ‘스타크래프트’와 롤플레잉게임의 전형 ‘디아블로2’를 성공적으로 유통하면서, 한빛소프트는 한국 게임 시장의 파이를 키워왔고 블리자드 게임에 대한 로열티를 높여왔다고 자부한다. 한빛소프트는 블리자드 게임의 전세계시장 유통량 40%에 해당하는 성과를 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리자드 모회사인 비벤디와의 파트너십은 그 이후로도 그다지 깊어지지 못했다.
코스닥 상장을 통한 한빛소프트의 또다른 도약을 준비하던 필자는 2000년 상장 실패의 고배를 마시며 블리자드 사의 ‘워크래프트3’ 계약이 코스닥 상장에 매우 중요한 사업임을 각인하게 됐다. ‘워크래프트3’의 사업 계약서가 절실하던 필자는 알면서도 비벤디와 불리한 계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계약 기간동안 판매할 수 있는 예상 수량’을 제시하는 ‘미니멈 개런티’라는 말은 ‘워크래프트3’ 계약 당시 그 의미가 유명무실 해졌다. 미니멈 개런티가 3∼4만장이 대부분이던 당시 비벤디는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2’의 성공을 통해 공격적으로 그 수량을 높여 제시했고, 국내 업체들의 과당경쟁은 도리어 외국 게임사의 입지를 굳히는 결과로 이어졌다.
필자는 기업공개(IPO)란 큰 뜻을 위한 시도로 ‘최소한’이 아닌 ‘최대한’의 수량을 계약하게 됐다. 그리고 2002년 ‘워크래프트3’ 출시 이후 한빛소프트는 현재까지 80만장을 팔았다. ‘워크래프트3’의 판매량은 PC방 산업이 쇠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수치라 생각된다.
돌이켜 보건대 ‘워크래프트3’는 2002년 월드컵에 가려진 안타까운 게임이다. 국민들의 관심이 월드컵에 집중되면서 대대적인 마케팅도 그 효과가 미미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2’의 성공 신화를 만들면서 엔지니어 출신인 필자는 자체 개발한 게임으로 전세계 시장을 공략하고자 하는 꿈을 조금씩 품게 됐다. 먼저 ‘탄트라팀’을 만들어 ‘탄트라’ 개발에 착수하면서 기술 노하우가 부족한 서버 프로그램 부문에는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외주 업체에 탄트라의 서버 세팅을 맡겼다.
그러나 자체적으로도 서버 개발 기술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뒤늦은 판단으로 뒤늦게 4명의 서버 프로그래머를 육성하기 시작했다. 첫 개발작인 ‘탄트라’의 오픈베타 출시 첫 날, 당시로는 예상하지 못했던 7만명 이상의 이용자가 몰리면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외주 업체에 맡긴 서버에 문제가 생기면서 ‘탄트라’는 시작과 함께 깊은 좌절을 맞았다. 접속자 7만명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그를 받아낼 수 없을 때의 그 답답함과 안타까움은 지금도 가슴을 저리게 만든다.
주변의 반응은 ‘탄트라는 실패했으니 빨리 접어라’, ‘끝난 게임이다’라는 식이 대부분이었으나 지금 이 순간을 이겨내지 못하면 앞으로도 고난을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육성하던 서버 프로그래머를 긴급 투입해 3개월 만에 ‘탄트라V2’를 선보였다. 이제 ‘탄트라’는 아시아 7개국에서 동시 서비스 되는 글로벌 게임으로서의 재평가를 받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어려웠지만 지난 역경의 순간은 지금의 한빛소프트를 있게 한 중요한 지침서가 됐다. 요즘은 100억원짜리 교육을 받았다고 가끔 농담을 한다. ymkim@hanbitsof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