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정보통신사업 입문
1994년 이동통신시장이 급격히 발전했다. 그리고 96년 필자에게 정보통신에 입문할 기회가 찾아 왔다. 정보통신사업부문장을 맡아 달라는 상부의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새로운 기회인 만큼 흔쾌히 승낙했다.
그러나 무엇을 해야 할지 막연했다. 직원이라고는 5명이며, 모두 비전문가였다. 아무 계획 없이 무작정 인원만 늘릴 수도 없었다.
당시는 ‘무선호출기(Beeper)’가 주류를 이루던 시기로 우선 호출기서비스 업체 인수를 검토하게 됐다. 이를 계기로 한국이동통신의 위성무선호출시스템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는 당시 업계에서 새로운 시도였다.
한국이동통신이 전국의 무선호출시스템을 위성으로 서비스하려던 참이었다. 대전 이북지역은 타 정보통신사에서 공급권을 받아 테스트중이었고, 그 외 지역에 대한 추가 공급까지 독점하기 위해 추진중이었다.
필자는 “안 되는 일은 없다. 기술발전에 주인이 따로 있나” 하는 신념으로 미국의 한 장비업체의 기술을 국내 환경에 맞게 준비시켜 96년 경쟁사를 제치고 당당히 공급권을 따냈다.
상호를 향후 유무선이 통합될 것을 짐작, ‘스매트정보통신’으로 결정했다. 스매트정보통신은 외국의 장비업체와 단순한 기술 공동개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관련한 AS 및 유지보수에 걸친 전반적 기술까지 완벽하게 넘겨받게 됐다. 이로 인해 공급에서 유지보수서비스까지 총괄 가능한 회사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이는 당시 업계 벤치마킹에까지 상당한 영향력을 뻗치게 되었다.
이후 한층 높은 기술개발에 주력, 정보통신업계에 입문하여 사업 초창기인 97년에 97억원의 매출달성과 함께 인력도 30명 정도로 늘어났다. 남보다 한발 앞선 기술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일념으로 매진한 결과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것이다.
빠르게 변해 가는 정보통신시장에서 숨 쉬고 있는 순간에는 항상 미래를 생각해야 했다. 향후 정보통신시장의 발전 방향은 전송 부분이며 위성을 통한 서비스 다음은 지상의 광케이블을 이용한 서비스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통신시장의 확대로 수요가 늘어나면서 기존의 주를 이뤘던 동축케이블의 한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광케이블로의 전환이 시급했다.
98년 IMF 당시 ‘위기가 기회다’라는 생각으로 전송장비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당시 대기업의 정보통신관련 계열사들은 자체망을 구축하기 위해 전송장비를 필요로 했지만 수입장비에 대해 환율에 대한 리스크로 업체들이 엄두를 못 내고 있던 실정이었다. 그때 외국의 한 통신전송장비업체로부터 장비 공급권을 따내 국내에 공급하기 시작했고, 300억원이라는 경이적인 매출을 달성했다.
이후 전송에 대한 부문으로 시작해서 중계기에 대한 개발까지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이제는 외국기술로 연명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자체 기술 개발을 추진했다. 곧바로 한 통신사의 연구소와 소형기지국 개념의 ‘FoMiCell’이라는 중계기를 공동으로 개발했다. 약 30억원의 개발비를 들여 공동으로 연구한 결과 RF 소형중계기만 개발하던 연구원들이 소형기지국 개념의 광중계기를 개발해 내는 큰 성과를 이뤘다.
이를 발판으로 ‘엔지니어들의 꽃’이라고 불리는 LPA(당시 전량 수입에 의존) 생산으로까지 영역을 확장시켰다. 통신업체에 실적이 없던 스펙테리안과 공급 계약을 하고 1999년 LPA를 공급하기 시작하였으며, 1999년에는 50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눈부신 성과에 감격이 밀려왔다. 하지만 끝이라는 것은 없다. 단지 변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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