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는 ASEAN(동남아국가연합)+3(한·중·일), 한·ASEAN 정상회의, 동아시아정상회의(EAS) 등 아시아지역 국가의 번영을 꾀하기 위한 정상회의가 잇따라 열렸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ASEAN의 미래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보기술(IT) 역량 강화사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천명했다. 같은 맥락에서 동아시아의 정보화 격차 해소를 위한 협력사업으로 ASEAN 내 정보화 접근센터 구축이라든가 IT기술정책조언, IT분야 인력양성 사업 등을 위해 오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1000만달러 상당의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IT 강국을 이끄는 지도자의 아량이다.
정상회의에서는 브루나이 국왕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필리핀 정상들이 지난달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우리나라가 선보인 최첨단 IT인프라와 시스템에 대해 극찬하고 IT분야나 지식기반경제 분야에서 한국이 ASEAN을 많이 도와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특히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은 “필리핀은 55년 전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파병을 해서 도왔고 지금은 한국이 앞선 IT를 필리핀에 지원해 주고 있다”며 “지난 50여년간 이어져 온 양국의 우정이 21세기 이후에도 지속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30여년 전만 해도 앞선 농업기술을 우리나라에 전수하는 등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필리핀에 첨단 IT시대에는 반대로 지원을 받는 위치가 됐다.
80년대 호황을 누리던 일본이 90년대 들어 거품이 걷히면서 심각한 장기 침체에 빠져들어 세월을 허송한 ‘잃어버린 10년’을 굳이 들먹일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지난 12일 ASEAN+3 정상회의 시작 직전에 정상 대기실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벽면에 걸린 국산 PDP TV를 가리키며 노 대통령에게 건넨, “한국이 많이 발전한 것 같다”는 말은 ‘제법 한다’는 비꼬는 말로 들릴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 기술 면에서 추월해 나가는 한국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해석된다.
오늘 자타가 공인하는 IT강국이 내일 어떤 모습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경제과학부·주문정차장 mjj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