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장군멍군`

을유년 2005년도 이제 열흘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열흘 후면 을유년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한 해가 저물어갈 무렵이면 예외 없이 ‘다사다난했던 한 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올해 IT분야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더 우울한 것은 한 해를 마무리할 지금도 끊임없이 ‘다사다난’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12월이야말로 2005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지 모른다.

 정보통신정책심의위원회는 엊그제 종합유선방송사업자221(SO221)가 공동으로 출자한 한국케이블텔레콤(KCT785)의 인터넷전화(VoIP)사업 신청에 대해 허가를 유보했다. 정책심의위원회는 “KCT가 VoIP 사업을 허가받으면 트리플플레이서비스(TPS)가 가능해지는데 이로 인해 현행법상 방송시장 진입이 어려운 통신사업자들이 불공정한 경쟁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방송위원회가 통신업계의 인터넷TV(IPTV140) 진출을 불허한 것에 대한 정보통신부의 대응으로 비쳐진다. 세계 최초의 법전인 ‘함무라비 법전’에 나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을 생각하게 한다. 통신과 방송 관련 부처 간 영역다툼이 표면화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정보통신정책심의위는 정보통신 관련 정책을 심의하는 정보통신부장관 자문기구다. 정책심의위의 이번 결정은 어쩌면 꼬일 대로 꼬인 통신과 방송 산업 간의 ‘교차진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결정이 미치는 여파는 크다. 무엇보다 방송과 초고속인터넷, 인터넷전화 등 이른바 트리플플레이서비스의 출현이 최소 6개월 늦어지게 된 것이다. 현재진행형인 IPTV를 둘러싼 논란에 불을 더 지필 수도 있다. 또 내년 2월 임시국회 발의가 예상되는 ‘광대역융합서비스법(가칭)’이나 방송법 개정안 등 IPTV 관련 법안의 처리 여부도 불투명하다.

 일반 국민이야 피부로 느끼기 어렵지만, 통신·방송업계 종사자들에게는 우울한 일이다. 안개만이 드리울 뿐, 내년을 위한 밑그림을 그릴 여유조차 없다. 트리플플레이서비스 시장을 둘러싼 통신·방송업계의 경쟁은 사실상 시차 없이 전개될 가능성이 커졌다. 정통부는 IPTV 서비스에 대해 일단 초기에 서비스를 상용화하고 시장이 형성되는 과정을 봐가면서 규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태도다. 하지만 방송위 반발은 강하다. 그래서 나온 게 주문형비디오(VOD) 형태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가. 원인을 하나하나 따지자면 끝이 없다. 그렇다고 마냥 정치권이나 정부 탓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기업이 스스로 이를 자초했으며 원인 제공자였음을 인정해야 한다. ‘통신·방송업계의 어려움을 너무 몰라준다’며 탓해본들 어쩌겠는가. 우리나라 통신업계와 방송업계는 어떤 자세로 스스로를, 또 내일을 바라보는가. 통신·방송 융합이라는 큰 흐름에서 IPTV와 트리플플레이서비스를 추진하는 등 바람직한 모습을 보였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서로 제몫을 찾기 위해 영역 진입을 허락하지 않는 고집을 보였다. ‘나는 빼고 너부터 바꿔라’고 하면 모두 구경꾼일 수밖에 없다. ‘나부터 반성’을 위한 범국민적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으면 대개벽을 기대할 수 없다. 행동보다 말이 앞서고, 말보다 주먹이 앞설 수밖에 없다.

 열흘이 지나면 2006년 새해가 시작된다. 추위가 가고 따뜻한 봄이 오면, 하나둘씩 매듭이 풀려나가 통신·방송업계에도 웃음꽃이 피기를 기대한다. 이 기대를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통신업계와 방송업계의 자성과 환골탈태다. 여기에 정부의 영역다툼만 없어지면 금상첨화다.

아듀, 우울했던 2005년.

◆윤원창 수석논설위원 wcy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