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좁다, 리더십도 세계화다.’ 다국적 컴퓨팅 기업이 잇따라 한국인을 아시아태평양지역 임원으로 발탁하고 있다. 올해 들어 한국IBM·한국EMC·PTC코리아 등 주요 기업의 한국인 아·태 임원 발령이 한 달에 한 번꼴로 일어나고 있다. 연말께면 아·태지역에 입성한 한국인 임원 수가 20∼3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업계는 “IT강국 코리아의 위상을 드높이고 한국 리더십을 인정받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환영하고 있다.
◇줄 잇는 아·태 임원행=대표적으로 다국적 컴퓨팅기업인 한국IBM을 꼽을 수 있다. 주철휘 마케팅 상무가 아·태 제조장치 산업본부 마케팅총괄 임원으로 발령난 데 이어, 파트너사를 관리하던 이장석 전무도 최근 아·태지역 인프라스트럭처 솔루션총괄 임원으로 발탁, 오는 10월 상하이에 있는 IBM 아·태 본사로 자리를 옮긴다. 지난해에도 이숙방 상무가 아·태지역 인프라 솔루션을 맡으며 이동했다.
스토리지 업체 네트워크어플라이언스(넷앱)코리아의 홍정화 사장도 최근 아시아태평양의 제품 및 얼라이언스담당 임원으로 발탁됐다. 홍 사장은 일본 지사의 제품·협력 부문까지 총괄하는 막중한 업무를 맡게 됐다.
박재희 한국EMC 이사도 다음달 아·태지역 마케팅 임원(디렉터)으로 발탁돼 업무를 할 예정이다.
다국적 소프트웨어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하완수 BEA시스템즈코리아 협력사담당 상무가 지난 5월 아·태지역 세일즈 매니저로 자리를 옮겼다. BEA코리아의 임원(매니저)급에서 아·태지역으로 자리를 옮기긴 이는 하 상무가 처음이다.
제품수명주기관리(PLM) 소프트웨어로 유명한 PTC코리아의 권규석 매니저도 최근 아·태지역 마케팅 매니저 경합에서 쟁쟁한 일본·중국 인사를 물리치고 발탁돼 업무를 맡고 있다.
◇이제 시작이다=지금까지 대부분의 아·태지역 임원은 본사 출신이 아니면 영어를 잘하는 호주나 싱가포르 출신들이 맡아 왔다. 최근에는 중국과 인도가 시장 잠재력을 내세워 전략적으로 임원 자리를 꿰차는 일이 많았다.
한 다국적기업 임원은 “최근 다국적기업 아·태지역의 돈줄인 재무 분야는 인도인이 장악했다고 보면 된다”며 “아무래도 아·태 요직에 한국 임원들이 없다 보니 한국 지사 시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털어 놓았다.
하지만 국내 컴퓨팅업계에 근무하는 인사들도 오랫동안 콘퍼런스콜 등으로 영어를 무리 없이 구사하고, 또 무엇보다 업무 능력면에서 중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낫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아·태지역으로 속속 발탁되고 있다. 앞으로 이런 움직임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IT강국 코리아 위상 높인다=영어와 시장 규모면에서 열세인 한국 지사에서 아·태 임원 발탁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 ‘후광’이 아닌 경영능력과 리더십으로 인정받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EMC 등에서 아·태지역 마케팅 디렉터가 나온 것도 한국 지사가 매년 만점에 가까운 마케팅 성과를 인정받고 전 세계 지사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업무수행 능력도 탁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후지쯔 역사상 첫 외국인 임원으로 기록된 안경수 회장(본사 경영집행역)은 아시아 11개국을 총괄하면서 주요지역 매출을 최고 50% 이상 끌어올렸다.
지난해 1월 HP 아·태지역 중 동남아시아 지역총괄에 오른 이기봉 부사장도 한국HP의 성공사례를 동남아지역에 접목, 실력 발휘를 톡톡히 하고 있다.
홍정화 넷앱코리아 지사장은 “아·태지역 임원으로 성공하려면 전 세계 시장 트렌드를 읽는 안목과 각국 지사의 현안을 꿰뚫어 보는 혜안이 있어야 한다”며 “아·태지역 임원 배출은 한국의 리더십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밑거름이 될 뿐만 아니라, 한국 지사와 국가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류현정기자@전자신문, dreamsho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