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피에스케이 박경수사장(4)

연구소에서 직원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필자
연구소에서 직원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필자

 IMF의 거센 한파는 피에스케이에도 피할 수 없었다. 구조조정과 임금 삭감이라는 고난 속에서도 한사람이 열사람 몫을 해내며 피에스케이를 지켜가는 직원들을 보며 내 모든 부정적인 생각과 걱정은 일단 뒤로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위기를 아직 완성되지 못한 기술력을 탄탄히 쌓아올리는

기회로 삼기로 다짐했다. 이 시기의 연구 노력이 없었더라면 우리회사를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피에스케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IMF! 지금도 이 세 글자만 들어도 몸서리치는 기업인들이 많을 것이다1998년 세계 D램 시장 규모가 1995년 대비 3분의 1 수준인 150억불까지 축소될 정도였으니 시장 상황이 오죽했을까. 게다가 D램은 우리나라의 주력 분야였다. 따라서 반도체 소자업체들은 투자를 대폭 축소하고 계획됐던 300㎜ 투자 역시 중단하게 되었다.

 반도체 장비업체는 그 특성상 소자업체들 보다 더 반도체 경기에 민감하다. 결국 주위 업체들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피에스케이도 마찬가지였다. 직원들은 약 30%정도가 나가고, 운영이 어려워 임금도 70%까지 줄이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단 한번도 임금을 체불하거나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은 없도록 경영자로써 최선을 다했다.

 나의 스트레스도 극심했다. 이제 200㎜장비 개발 성공과 함께 성장에 날개를 다는 듯 했던 회사가 불과 1년여 만에 매출이 3분의 1수준으로 줄어들고, 동고동락을 같이했던 직원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는 심정은 참담 그 자체였다.

 산행을 시작하게 된 것이 바로 이때부터다. 워낙 운동을 좋아해 골프며 헬스를 섭렵한 나지만 답답한 마음에 오른 청계산의 새벽 모습은 내 모든 고뇌를 알아주는 듯 했다.

 그래, 이대로 절망하고 주저앉아있을 수만은 없다. 다시 시작하자!

 우선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아주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기술이 아닌 열정으로, 기계가 아닌 사람이 일했던 당시, 우리 직원들을 떠나게 한 건 월급의 액수도 업무과중도 아닌 무료함이었다. 할 일이 없다는 무료함은 그들을 더욱 지치고 힘들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을 만들기로 했다.

 첫째 전국에 있는 고객사들을 순회하며 장비의 무상 AS를 실시했다. 장비를 개발한지 오래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소자업체도 우리도 모르는 부분이 더 많았던 시기였다. 따라서 제품 결함도 종종 발생해 밤을 새우며 문제를 해결하고는 했는데 (세팅 초기에는 1년여를 고객사에서 상주하기도 했다) 다시한번 지방까지 직접 방문해 재점검하고 제품에 관한 설문조사도 실시해 고객의 목소리를 듣는 좋은 기회로 삼은 것이다. 이러한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고객사 와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 물론 장비의 안정성과 효율성 확보 등 기술력을 한단계 발전시킬 수 있었다.

 둘째 300㎜장비 개발을 진행했다. 1997년 상장을 통해 공모한 자금을 바탕으로 연구개발에 지속적인 투자를 감행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 시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피에스케이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업을 하는데 아이템 선정은 중요하다.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수완능력 등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하지만 찰나의 수요를 노리는 트렌드성 소비재를 제외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다. 단단하게 잘 다져진 기반 위에 세워지지 않은 집은 무너진다는 사실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특히나 반도체와 같은 첨단기술 산업에서 기초의 중요성은 말해 무엇할까.

 우리는 그 어려웠던 시기를 우리의 기술적 기반을 탄탄하게 쌓아올린 절차탁마의 기회로 본다. 200㎜장비의 완성도를 높이고 그 기술적 내공을 다지게 해줬을 뿐만 아니라 300㎜ 양산장비 개발 성공으로 세계적인 장비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우리를 만든, 피에스케이 역사상 가장 뜻깊은 시간이었다.

kspark@psk-in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