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인터넷]무선 망 개방(3)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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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0개 이상의 유명 브랜드숍이 모여 있는 런던 최대 번화가 옥스퍼드 서커스. 이 거리 모퉁이에 보다폰과 O2의 매장이 나란히 붙어 있다. 보다폰 매장에 들어서자 삼성전자를 비롯해 노키아, 모토로라, 소니에릭슨, LG전자 등 전 세계 내로라하는 최신 휴대폰들이 저마다 자태를 뽐낸다. “어떤 요금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공짜 휴대폰을 비롯해 최신 노키아 단말기까지 입맛대로 고를 수 있습니다.” 여느 이동통신 대리점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매장 점원의 말이다.

 그러나 “일정 기간 약정을 하고 데이터 정액제를 택하면 휴대폰에서 인터넷 서핑이 무제한입니다”는 말에는 귀가 솔깃해진다. 점원의 휴대폰으로 즉석에서 구글과 유튜브에 접속해 봤다. 말 그대로다. 혹시나 해서 보다폰라이브에서 빠져나와 주소창을 찾아 네이버와 다음 사이트에도 연결해봤다. 폰트는 깨지지만 눈에 익숙한 화면들이 금세 펼쳐진다. 모바일 인터넷을 무제한 사용하기 위해 지급해야 하는 비용은 매월 5∼7.5파운드. 런던 시내 식사 웬만한 식사 한 끼가 7∼10파운드인 점을 감안하면 식사 한 끼 비용으로 원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휴대폰으로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는 셈이다.

 유럽의 맹주답게 영국은 모바일 인터넷 분야에서도 경쟁이 가장 활성화됐다. 보다폰, 오렌지, O2, T모바일 등유럽 주요 이동통신사들이 치열한 서비스·콘텐츠 경쟁을 펼치면서 2∼3년 전부터 가입자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동통신 보급률이 이미 120%에 이르러 포화상태를 맞은만큼 인터넷 분야로 활로를 모색하겠다는 사업자들의 전략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약정제 정착에 이은 데이터 정액제 출시는 이 시장을 폭발적으로 성장시켰다.

 ◇ 보다폰, 공격적인 무선망 개방 전략=1위 사업자인 보다폰이 더 빨리 움직였다. 외부 포털 콘텐츠 검색을 위해 자체 포털 ‘보다폰라이브’에 검색박스를 게재하고 공격적인 정액제를 도입한 것. 무선망 개방 시점도 전략적으로 택했다. 2∼3년 전부터 PC 기반 초고속인터넷 가입자가 늘어나기 시작한 시점을 겨냥해 공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PC로 인터넷을 즐기는 경험을 한 이용자들에게 휴대폰에서도 동일한 환경을 제공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냈다는 것이다.

 보다폰은 2008년 1분기 데이터통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0% 가까이 늘었다. 가입자당매출(ARPU)에서 데이터가 차지하는 비중도 2006년 20%에서 올해 30%에 근접했다(2008년 6월 크레디트스위트 자료). 아직 O2의 34.4%에는 못 미치지만 데이터 정액제 가입자의 가파른 상승 등으로 인해 성과가 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마크 퍼시 보다폰 이사는 “지난해 2월부터 영국인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페이스북, e베이, 유튜브 등 인터넷상의 웹사이트를 모바일 인터넷으로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매출이 타사를 능가하고 있다”며 “e베이 계정을 갖고 있다면 PC로 물건을 거래하듯 보다폰라이브에 접속해 상거래가 가능한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고객 요구 맞춰 진화하는 요금·서비스=보다폰과 선두 다툼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는 O2도 이에 질세라 ‘O2 액티브’라는 모바일 인터넷 브랜드를 선보였다. T모바일도 웹앤워크라는 상품을 출시하면서 18개월 약정제에 월 7.5파운드만 추가하면 무제한 이용가능한 e메일 및 웹브라우징 서비스를 내놨다. 이 외에도 하루만 모바일 인터넷을 이용하고픈 사람을 위해 1파운드에 무제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상품도 인기다.

 런던 시내에서 만난 직장인 줄리(27)는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쓸 일이 거의 없다”면서도 “휴가 때 런던 교외로 놀러갈 때 구글맵스로 길을 찾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일일 데이터 요금제는 아주 유용하다”고 극찬했다.

 보다폰이 일부 개방한 모바일 브라우저 플랫폼을 활용해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mpbile friendly pages)한 인터넷 사이트만 줄잡아 600여개다. 보다폰라이브에서 찾기 어려운 사이트는 바로 빠져나와 ‘go to address’ 주소창에 URL만 입력하면 된다. 물론 콘텐츠 다운로드도 가능하다. 비즈니스 모델 외에 외부 CP가 보다폰 이용자에게 다가갈 수 없는 그 어떤 장벽도 없었다.

런던(영국)=김민수기자 mimoo@

◆고객이 행복하다면 ‘no problem’

 영국의 통신 정책 기조는 ‘사업자 자율 경쟁’과 ‘소비자 최우선’으로 요약된다.

 정보통신국제협력진흥원(KIICA) 런던센터의 마이클 피츠시몬스는 “영국 정부와 기관은 사업자에게 어떤 정책을 지시하거나 강제하는 사례가 거의 없다”며 “다만 어떤 사업자의 행위에 영국의 소비자가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을 때만 엄격히 규제하거나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시장이 활성화하는 상황에서는 폭넓은 개념의 가이드라인만 만들어 지켜보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신속히 제어하는 조정자 역할을 한다는 설명이다. 무선망 개방에 대한 원칙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정보통신 규제기관인 오프콤이 이동통신사업자에게 무선 네트워크를 외부 인터넷 사업자에게 개방하라는 정책을 내놓은 적이 없다. 마크 퍼시 보다폰 이사는 “보다폰라이브가 제공할 수 있는 콘텐츠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소비자를 위해 개방 외의 다른 결정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정부가 움직이기 전에 사업자가 먼저 움직이는 자유경쟁의 상징 영국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SK텔레콤의 신세기통신 합병인가 조건으로 정부가 나서서 무선망 개방을 내걸었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소비자의 선택권에 제약을 받는 국내 현실과는 사뭇 다른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