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위기가 실물경제로 번진 가운데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이 유일한 탈출구로 떠올랐다. 금융권이 제 살길을 찾는 데 급하며, 정책 당국도 기업에 일일이 신경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선 기업끼리만이라도 서로 도와야 당면한 경기 침체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마다 투자 축소 등 허리띠를 죄고 있지만 이 같은 긴축경영의 확산은 무수한 공급망으로 연결된 산업 생태계까지 흐트러놓는다. 열악한 중소 부품 협력사의 도산이나 경쟁력 약화는 결국 세트업체의 경쟁력에도 금이 가게 만드는 악순환을 부른다. 연구개발부터 구매관행에 이르기까지 대·중소기업 간 상생 협력이 평상시보다 지금과 같은 위기에 더 절실한 이유다.
특히 경영 구조가 취약한 중소 협력사들을 안정화하는 게 급선무다. 중소기업 CEO들은 최근 벼랑 끝에 서 있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한국은행이 지난 31일 2127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11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 따르면 65로 전월의 78에 비해 13포인트나 급락해 지난 1998년 4분기(55)이후 가장 낮았다. 그런데 대기업은 13포인트 떨어진 68, 중소기업은 14포인트 하락한 63이었다. 중소기업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지수에 그대로 녹아 있다.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는 대기업이 이럴 때 중소기업의 손을 잡아줘야 한다. 이환용 디지텍시스템스 사장은 “상생이란 것이 결국 서로 같이 살자는 의미인데 요즘처럼 업황이 어려울 때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 협력하고 도와야 한다”며 “서로에게 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그것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상생 분야는 수두룩하다.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우선 대기업들이 대금 결제 주기만 줄여도 최근 금융 위기 속에서 자금 상환이나 추가 담보 압력을 받고 있는 중소기업들의 숨통이 트인다.
정보와 성과를 공유하는 것도 또 다른 방법이다. 대기업과 협력사가 함께 연구개발을 통해 불황기에도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차별화한 제품을 내놓을 수 있다. 생산 합리화와 원가 절감을 기대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거둔 성과를 공유하는 이른바 성과공유제는 ‘갑’과 ‘을’의 체질을 모두 튼튼하게 할 수 있다. 무조적건인 단가 인하보다 모든 제품 품질과 원가와 관련된 종합적인 흐름에 초점을 맞춘 시스템을 구축, 신뢰 속에 낭비 요인을 제거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외부 기업과의 연구개발 협력 및 아웃소싱 등을 강조하는 이른바 ‘개방형 혁신’도 새로운 상생협력 기법이다. 기술 유출 등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대·중소기업 간 신뢰만 선행한다면 큰 문제는 없다. 손소영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발주한 과제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도 대기업에만 귀속될 뿐 중소기업은 추가 보상을 못 받는다”며 “신뢰와 보상에 의거한 협력 시스템 구축이 필수”라고 말했다.
상생의 혜택을 중소기업만 입는 게 아니다. 대기업은 자금 지원을 하지 않고도 관심만 보여도 실질적인 효과는 물론 책임 있는 기업이라는 이미지 제고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김영범 코닉시스템 상무는 “이번 상생협력주간은 경기가 어려울 때 후방기업을 지원해 경기회복 때 과실을 나눠먹자는 취지”라며 “이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사회적책임 경영과도 맥을 같이한다”고 말했다.
삼성전기의 협력사당 평균 거래금액은 2004년 15억원에서 올해 33억원으로 2.2배 증가했다. 지난 2004년부터 지금까지 95개 협력회사에 280억원 규모의 자금 지원해 경영컨설팅 및 임직원 교육훈련을 실시한 결과다. 삼성전기 측은 “글로벌 사업역량 확보를 통한 협력회사와의 동반성장이 매우 중요해 신뢰를 바탕으로 한 상생협력을 확산하기 위해 체계적인 지원을 펼치겠다”라면서 “앞으로 엔지니어링 컨설팅과 같이 협력사의 기술역량을 강화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진호·한세희기자 jholee@etnews.co.kr
◆상생협력주간 행사들
대중소기업협력재단은 4일부터 7일까지 ‘2008 상생협력 주간’으로 선포, 다양한 행사를 갖는다. 경제 위기 돌파의 밑거름이 될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한 행사다.
5일과 6일 춘천에선 ‘성과공유제 우수 사례 발표회’가 열린다. 델파이·삼성전기·한국전력공사 등 성과공유제에 대한 성공 사례를 소개한다.
6일 제주에선 ‘글로벌화 시대의 상생협력과 기술자료 임치제도의 전망’이란 주제로 기술자료 임치제도 발전 연구회 창립총회와 글로벌 네트워크 포럼이 열린다. 기업 간 거래되는 핵심 기술을 제3의 기관에 임치,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기술이 유출될 우려를 없애고 대기업은 협력사 도산 등의 상황이 생기면 기술 자료를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중소기업들을 위한 대기업 구매정책 발표회가 5일 열리고 전자·자동차·파인세라믹스 등 5개 업종별 상생협력 행사가 5∼6일 개최된다. 삼성전기·SK텔레콤 등은 ‘협력사 데이’를 개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