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보는 세상] 웹툰, 스크롤 만화를 벗어나기 시작하는가

[만화로 보는 세상] 웹툰, 스크롤 만화를 벗어나기 시작하는가

 잠시 웹툰의 역사를 되짚어 보자. 초고속 인터넷망을 기반으로 웹이 보편화하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부터 일기 형태의 만화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내용에 빗대 에세이툰, 감성툰 등으로 불리던 이들 작품군은 출판 만화와는 달리 웹브라우저의 스크롤바를 내려가며 전개를 볼 수 있었어 넓은 의미에서 ‘스크롤 만화’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아기자기한 그림과 짧은 분량, 서정적이거나 일상적인 내용 그리고 무엇보다 돈을 따로 내지 않아도 볼 수 있었던 데에서 오는 높은 접근성 등으로 독자의 공감을 얻었다.

 카페에 올리던 심승현의 ‘파페포포 메모리즈’나 직접 홈페이지를 만들어 올리던 ‘스노우캣’ ‘마린블루스’ 등은 이러한 초창기 스크롤 형식 만화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내용보다 캐릭터·팬시성을 주목받은 스노우캣과 파페포포 메모리즈, 캐릭터 업체 입사용 포트폴리오로 제작되다시피 했던 마린블루스 등 이 시기 만화의 성격은 엄밀히 말해 플래시 웹애니메이션으로 각광을 받았던 ‘마시마로’와 ‘우비소년’이 지니고 있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크롤 만화가 가벼운 내용과 눈에 띄는 캐릭터로 짧은 분량 안에서 독자를 공감시키는 조류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게 된 것은 2003년 강풀이 미디어 다음에 ‘순정만화’를 발표하면서부터다. 만화가 데뷔를 위해 여러 곳의 문을 두드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던 강풀은 홈페이지를 만들어 직접 공감형 만화를 엽기적인 내용을 섞어 그려 올리기 시작했으며 이윽고 인터넷 공간에서 폭발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못 그린 그림이지만 내용이 확실하게 재미있는’ 강풀의 재능은 이윽고 순정만화를 통해 단순 공감을 넘어 스크롤 만화의 특성인 ‘내려보기’ 연출에 장편극의 묵직한 호흡을 섞어내는 데에 성공한다. 비로소 스크롤 만화가 제대로 된 ‘이야기’를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순정만화 이후 2005년 강도하가 미디어 다음에서 ‘위대한 캣츠비’를, 양영순이 파란닷컴에서 ‘1001’을 선보이며 ‘웹툰’이라는 장르명이 정립되기에 이른다. 정작 본인들이 표현을 달가워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웹툰 르네상스 시대를 연 삼두마차(트로이카)’로 불리는 이들 이후, 웹툰은 이들이 선보인 스크롤 문법의 틀 안에서 다양한 작가군을 낳았다.

 하지만 강풀 이후 그림을 못 그려도 내용이 좋으면 된다는 유와 그 반작용으로 그림의 질을 극도로 올리는 유로 나뉜 신인급 웹툰 작가군은 웹툰의 만화적 가치와 자산, 즉 ‘이야기와 그림의 어울림’과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담아내는 그림’ 그리고 ‘그림으로 표현되지만 사실은 고도의 영상언어’에 가깝다는 면을 이해하지 못한 채 어느덧 ‘무림수사대’의 이충호나 ‘이끼’의 윤태호, ‘보톡스’의 황미나 등 출판만화 시대의 고수들에게 추월을 허락했다.

 이런 기본기가 튼실한 기성 작가들의 대거 유입은 2005년 이후 몇 년간 웹툰이 장르적 성취를 거의 이루지 못한 채 초기에 선배들이 세워놓은 자산을 까먹기만 했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반성할 점이 크다. 기성 작가들의 웹툰은 아주 새롭지는 않지만 다시금 만화에서 필요한 기본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스스로를 차별화했다.

 이러한 와중에 미디어 다음은 만화 시사회라는 이름으로 출판만화들을 별도 뷰어 설치 없이 일부를 보여주는 서비스를 시작하는 한편 지나간 ‘굿모닝 티처’ ‘인어공주를 위하여’ ‘용비불패’ ‘폭주기관차’ 등 옛 명작들을 공개해 기존 출판만화 독자층의 시선을 잡아 끌었다. 지난 10월 말부터는 조재호가 ‘ROAD TO 2010 폭주기관차’라는 제목으로 폭주기관차의 후속편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것은 미디어 다음이 이 신작을 스크롤 만화가 아닌 기존 출판만화 형태로 공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는 기성 작가들의 진출을 넘어 ‘포털 웹사이트에서 연재되는 만화’에서 스크롤 만화와 출판 형식의 만화의 경계선이 사라진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미디어 다음은 소소한 이벤트 식으로 기존 인기작들을 공개했던 것에서 한층 더 공격적으로 나선 셈이다.

 강풀 이후 정립된 웹툰이라는 형태가 스크롤 만화의 틀에 갇혀 장르적 진보를 이루지 못하고 있던 시점에 웹툰의 자리에 오히려 퇴물이 됐다며 비아냥을 사던 출판만화가 들어선 시점. 작가에 이어 형식까지 돌아온 이 시점이야말로 웹툰 장르가 개변을 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로가 아닐지 다시 한 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서찬휘 만화 칼럼니스트 seochnh@manhwa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