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증’에 숨 넘어가는 창업벤처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2007년 설림 A사(LED 부품업체) 주요 인증 획득 현황

 LED 조명을 개발하는 A사는 지난 한 해 동안 2500만원 안팎을 들여 20개가량의 인증을 받았다. 임직원이 20명이니 일인당 하나씩 받은 셈이다. 올해도 환경마크, 녹색인증제 등을 추가로 받을 예정이다. 이 회사의 B대표는 “기술을 인정받기 위해 어쩔 수 없지만 인증 작업을 진행하다 보면 한도 끝도 없다”며 “KS와 고효율기자재 인증은 10가지 항목 중 8가지는 중복된다”고 말했다.

 올해 설립 10년차인 인터넷 콘텐츠 개발업체의 한 임원도 “사업 초창기에는 1년 내내 인증서를 받기 위해 골머리를 썩혔다”며 “지금 보면 별것도 아닌 것을 갖고 너무 오랜 시간을 소비했다”고 말했다.

 

 정부와 민관 단체들이 남발한 인증제도가 기술 개발을 끝내고 사업화하려는 중소 벤처기업의 발목을 잡았다. 특히 갓 창업한 회사들은 발주처가 어떤 인증서를 요구할지 몰라, 무조건 인증을 획득해야 하는 처지여서 비용과 시간 모두 큰 부담이다. 전문가들은 수많은 인증제가 창업 벤처기업에는 큰 규제요소로 작용하면서 심지어 이들이 기술개발에 매진하는 것을 가로막는다고 비판했다.

 최기흥 한성대 기계시스템 공학과 교수는 “인증 자체가 기술 개발을 저해하면 안 된다”며 “법정 강제 인증제은 유럽은 27개국을 통틀어 한 개에 불과한 데 비해 우리나라는 부처별로 39개나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녹색 등 신성장산업을 중심으로 초기 벤처기업들은 기술 상용화 및 사업수주 과정에서 수많은 인증서 제출을 요구받는다. 일부 인증제는 기준이 유사하다. e러닝 산업은 유사한 인증제가 남발되는 대표적인 분야다. 지식경제부·교육과학기술부·노동부가 각각 산하기관을 통해 인증제를 만들었으며 민간도 인증제를 따로 운영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업 발주처마다 요구하는 인증서가 다르다는 점이다. 예컨대 A·B·C 인증서 가운데 하나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발주처는 A인증서를, 또 다른 발주처는 B인증서를 요구하는 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요구하는 인증서를 보면 어느 업체를 선정할지를 미리 점찍었다는 생각도 든다”며 “인증서가 되레 ‘공정한 룰’을 깬다”고 비판했다. 일부 분야에는 인증제가 품목군이 아닌 품목별로 운영돼 작은 기술을 업그레이드할 때에도 인증을 다시 받기도 한다.

 정부의 생색내기 식 실적 쌓기도 업계를 힘들게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e러닝업체 사장은 “정부기관의 눈치가 보여 인증서를 무시할 수 없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인증제 남발은 요즘처럼 기술이 급변하는 때 한창 사업화와 추가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 기업에 커다란 부담이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산업 전체가 융·복합화하는 추세에 맞춰 기존 인증시스템에도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며 “시장 환경에 맞지 않는 제도로 인해 기업들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인증을 받고 있다”고 인증 통합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준배·황태호기자 j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