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보는 세상]병맛만화, 루저문화, 청년문화

[만화로 보는 세상]병맛만화, 루저문화, 청년문화

 일정한 완성도에 도달해야 매체에 발표되는 기존 만화와 달리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디씨만갤이나 루리웹이나 웃대 등)의 게시판에 오르는 만화들은 형식적 완성도에서 자유롭다. 근대에 이르러 대중매체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만화는 고도화된 형식적 완성도를 필요로 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만화는 형식적으로 완성된 근대 만화다.

 반면 만화의 원형적 형태는 오히려 형식적 완성도에서 자유롭기도 하다. 만화의 원형적 형태란 한마디로 정의하면 이미지 언어다. 이미지 언어는 이미지를 통해 발화하고, 소통하는 언어다. 목적은 소통에 있다.

 우리가 흔히 만화라고 부르는 (근대)만화는 형식적 완성도에 미학적 완성도를 추구한다. 반면 만화의 원형적 형태인 이미지 언어는 효율적 소통을 추구한다. 그런데 21세기 인터넷 공간에 등장한 ‘병맛만화’라 불리는 만화들은 만화가 추구하는 형식적 완성도와 미학적 완성도를 ‘무시’한다. 대신 효율적 소통에 매달린다. 21세기 들어 만화가 다시 출발점으로 유턴한 셈이다.

 앞서 열거한 디씨인사이드나 루리웹이나 웃대 등에 올린 병맛만화들을 보면 게시판 문화(폐인문화, 디씨문화 등으로 표현되는)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 만화에 나오는 숱한 암호들을 해독할 수 조차 없다. 아예 원초적으로 소통이 불가능한 것이다. 병맛만화는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게시판 문화를 공유하는 이들과 소통한다. 그런데 이들은 대부분 10∼20대들이다. 그러니까 게시판 문화는 10∼20대의 문화이고, 병맛만화도 10∼20대의 문화다.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해 일반화된 병맛만화는 때로 공적인 게시판에 연재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작품이 조석의 ‘마음의 소리’와 ‘이말년 씨리즈’다. 흔히 이런 만화는 그냥 ‘유머만화’로만 해석하는데, 내면에는 단순한 유머를 넘어서는 10∼20대의 문화가 있다.

 우선 병맛만화에서 주로 다루는 상황은 ‘병맛’이라는 단어의 어원으로 유추되는 ‘병신의 맛’이다. 올해 3월5일자 이말년 씨리즈를 보면 기말고사 에피소드가 나온다. 서로 꼴등하기 위한 경쟁이다. 이를 만화에서 ‘정도병신’과 ‘사도병신’으로 나눈다. 정도병신이란 모든 문제를 성심성의껏 풀고 후진 점수를 받는 병신, 사도병신이란 백지로 제출하는 등 노력하지 않는 방법으로 후진 점수를 받는 병신이다. 영문해석 문제, 원소기호 문제, 이상의 마지막 대사 문제 등이 나오는데, 이 문제들은 모두 디씨인싸이드에서 나온 개그들이다.

 이처럼 병맛만화는 덜떨어진 사람들, 돈 못 버는 사람들, 실패한 사람들이 주인공이고 그들을 조롱한다. 대신 게시판 문화에서 나온 특유의 애드립들을 섞어가며 조롱이 실제화하는 것을 막아낸다. 그리고 10∼20대 독자들은 병맛만화를 보고 즐거워한다. 우리만 이해할 수 있는 문화라 생각한다.

 이들은 댓글을 통해 필요할 때, 친절한 해석을 올린다. 우리끼리 함께 공유하기 위해서다. 댓글은 그들이 보여준 연대의 방식이다. 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이 자신들끼리만 소통된다고 생각한 은어를 사용하듯 지금 10∼20대도 게시판 언어를 사용하고, 또 그것을 친절하게 풀어주며 연대하려고 한다.

 병맛만화는 우리 시대의 청년문화다.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신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나보다 더한 루저들의 이야기를 통해 소통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루저로 만드는 사회를 향해 병맛이라는 새로운 연대의 스크럼을 만들어냈다. 분노의 에너지는 병맛을 통해 응축되고 있는 중이다.

 박인하 만화평론가·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교수 enterani@c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