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남아공월드컵은 역대 어느 대회보다도 승부를 점치기 어렵다. 여러 변수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인데, 공인구 ‘자블라니’도 변수 중의 하나다. 역대 월드컵 공인구 가운데 가장 둥글기 때문이다.
축구 초창기에 축구공은 소나 돼지의 오줌보(방광)에 바람을 불어넣은 수준. 이후 동물가죽에 털을 채워 넣어 사용했고, 19세기 초반에 8조각의 가죽을 이어 만든 최초의 정식 축구공이 탄생했으나 구(球)의 형태와는 거리가 멀었다.
완전한 축구공에 도전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19세기 후반에 축구공의 조각 수가 많을수록 구에 가깝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후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최초의 공인구 ‘텔스타’가 등장했다. 32조각을 이어 붙여 꿰매서 제작한 텔스타는 축구공의 기본형으로 오랫동안 축구계를 지배했다. 이어 등장한 ‘트리콜로’ ‘피버노바’ 등도 기본적으로 32조각의 원형을 유지했다.
여기에는 오일러라는 18세기 수학자의 ‘다면체 정리’라는 오묘한 법칙이 숨어있다. 정다면체는 각 꼭짓점에 모이는 면과 모서리의 개수가 같고 각 면이 모두 정다각형이며 합동인 입체를 말한다. 오일러는 도형이 정다면체가 되려면 ‘점-선+면=2’라는 공식을 만족해야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법칙에 따라 존재하는 정다면체는 총 5개. 그중 가장 면이 많은 정이십면체(정삼각형 20개)의 모양이 축구공 제작에 응용됐다. 정이십면체의 꼭지점을 깎아 12개의 정오각형과 20개의 정육각형으로 이뤄진 구 형태에 가까운 다면체가 텔스타의 축구공이다.
32조각의 판형은 오랫동안 축구공을 지배했다.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공인구 피버노바의 경우 공의 반발력과 탄력, 회전력 등을 대폭 향상시킨 것으로 평가받았으나 32조각면의 판형은 그대로 유지됐다.
그러나 축구공의 이런 전통은 지난 2006 독일월드컵의 공인구 ‘팀가이스트’에 의해 무너졌다. 팀가이스트는 전통적인 32면체의 공을 14면체로 축소, 보다 구에 더 가깝게 제작됐다. 그리고 2010 남아공월드컵 공인구 ‘자블라니’가 탄생했다. 자블라니는 14개의 조각을 더욱 줄여 8개의 가죽조각으로 이어붙였다. 역대 월드컵 공인구 중에 가장 구 형에 가깝다는 평이다.
전문가들은 “자블라니는 팀가이스트와 여러 면에서 비슷하지만 반발력 편차가 조금 커져 더 멀리 빠르게 날아갈 수 있다”고 평가한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kr·자료협조=한국과학창의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