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의 패자, 그들은 부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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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먼브러더스 사태 발발 직후인 2008년 후반. 회사를 착실히 운영하던 휴대폰 부품업체 I사 박 대표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과 거래하던 중견 A사로부터 대규모 물량을 땄으니 함께 납품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 공장을 하나만 운영하던 I사는 급하게 외부자금을 수혈, A사가 요청한 스팩에 맞춰 2곳에 설비투자를 하고 본생산을 앞뒀다. 그러나 A사의 개발 제품이 대기업의 요건에 충족하지 못해 납품이 취소되고 관련 임원들이 모두 물러났다. 그 여파로 I사는 지난해 3월 문을 닫고 말았다. 박 대표는 “중견기업인 A사의 제안을 100% 확신해 손실에 대해서는 제대로 약정을 안했다. 내가 직접 결정한 일이지만 너무나 억울했다”고 토로했다.

 #1990년대 중반 설립된 모터 개발업체 S사는 2000년대 들어 차세대 주력상품으로 BLDC 모터 개발에 착수했다. 모터시장이 BLDC로 넘어갈 것이라는 예상에 따른 것으로 본격적인 생산을 앞두고 있던 회사는 뜻하지 않던 악재를 맞았다. 그동안 모터를 공급하던 핵심 고객사 경영진이 갑자기 교체되며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고 통보해온 것. 막대한 설비투자로 자금압박에 시달리던 S사는 주 수입원이 끊기며 2002년 폐업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 김 대표는 “시제품을 내놓고 막 광고를 하려던 시점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재창업자금 지원업체’로 선정, ‘신용불량자’ 딱지를 떼고 당당히 CEO로서의 활동을 앞두고 있는 두 중소기업인 사례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었으나 우리나라 창업 환경 특성상 금융기관을 이용했고, 그 과정에서 원치 않게 신용불량자라는 멍에를 썼던 CEO들이다.

 중기청과 중진공이 올해 처음 도입한 재창업자금은 이런 선의의 피해자를 구하기 위해 마련했다. I사 박 대표는 “신불자로 취업도 할 수 없었다. 몇 달을 쉬다가 개인 메일에 재창업자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봤다.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라는 심정으로 신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사업할 때 중진공에 개인 메일주소를 등록했던 것이 크게 도움이 됐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두 곳 모두 지난달 새로운 회사명으로 법인 설립을 끝내고 ‘패자부활’을 꿈꾸고 있다. 이들 기업인들은 부활에 대해 확신을 보였다. S사 김 대표는 “재기를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려 왔다. 과거 엔지니어로서 경영상의 단점을 많이 깨달았다”면서 “(폐업 후) 10년 가까이 뒤에서 많은 경험을 했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중진공은 이들 두 명을 포함해 현재까지 총 20명에게 23억5700만원 규모의 재창업자금을 지원했다. 지금까지 총 95명이 신청을 했으며 이중 20명이 승인을 받았고, 19명은 평가 중이다. 당초 올해 200억원가량의 자금을 집행할 계획이지만, 신청이 예상만큼 많지 않았다. 문정환 중진공 대리는 “연락을 많이 하며 관심을 보이고는 있지만 신용회복을 해야 하고 돈을 분할해서 갚아야 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용어설명:재창업자금=중소기업청이 실패한 중소기업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중진공의 기업·도덕성 평가 및 신용회복위원회의 신용회복심사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업실패로 연체 정보가 등재돼 있는 실패경영인이 대상이다.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면 시설자금을 포함, 연간 10억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