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친환경 시장 `에코디자인`이 연다<5회>국제표준을 선점하라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전기전자제품과 시스템을 위한 환경표준(TC111) 워킹그룹(WG)별 역할

표준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정도나 성격 등을 알기 위한 근거나 기준 혹은 일반적·표준적인 것이다. 어떤 산업에서든 혼란 없이 원활하게 제품 생산과 거래가 이뤄지려면 표준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공인된 표준이 특정 집단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경우 다른 집단은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특별기획]친환경 시장 `에코디자인`이 연다<5회>국제표준을 선점하라

지난 5월 중국에서 열린 IEC/TC111 워킹그룹(WG)3 회의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 5월 중국에서 열린 IEC/TC111 워킹그룹(WG)3 회의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특별기획]친환경 시장 `에코디자인`이 연다<5회>국제표준을 선점하라

국제표준 제정에 있어 이런 일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특정 국가가 주도해 만든 국제표준은 자국에게 큰 경쟁력이지만 다른 나라에게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에코디자인도 마찬가지다. 환경 문제가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른 지금, 관련 국제표준을 선점하기 위한 국가 간 소리 없는 총성은 계속되고 있다.

◇IEC/TC111의 탄생

세계적인 표준기구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국제표준화기구(ISO)를 떠올린다. ISO는 지적 활동과 과학·기술·경제활동 분야에서 국제적인 상호 협력을 위해 만들어진 대표적인 표준기구다. ISO가 폭넓은 표준 제정 활동을 수행한다면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는 전기·전자업체에 있어 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영역의 표준을 다룬다.

IEC는 회원국 간 규격을 제정하고 표준화해 전기·전자제품에 대한 품질·안전성을 확보하고 유통을 원활히 하는 역할을 한다. IEC는 여러 기술위원회(TC, Technical Committee)로 구성돼 있으며, 환경에 대한 표준을 만드는 기술위원회가 TC111이다.

TC111은 이탈리아가 제안해 지난 2004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제68회 IEC 총회에서 창설됐다. 정식 명칭은 `전기전자제품과 시스템을 위한 환경 표준`이다. ISO에서는 TC207이,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서는 SG5가 TC111과 비슷한 제품 환경 분야를 다루고 있다. ISO는 기업 경영 전반에 대해, ITU는 통신기기에 대한 환경 표준을 담당해 IEC와 차별화 된다.

김기정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환경에너지팀장은 “전기·전자제품 내 납, 카드뮴 등을 제한 농도 이하로 규제하는 지침 RoHS가 생겨난 이후 소비자가 사용하고 폐기하는 단계에서도 환경적 영향을 줄여야 한다는 요구가 생겨났다”며 “이 부분에 대한 표준화가 필요해지면서 TC111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TC111은 워킹그룹(WG), 프로젝트팀(PT) 등으로 구성됐다. WG는 총 4개로, WG1은 RoHS가 규제하는 물질 외 어떤 부분까지 표준화가 필요한지 정하는 역할을 하는 `물질선언 작업그룹`이다.

WG2는 기업이 에코디자인을 적용해 제품을 만들기 위해 어떤 과정에 따라야 하는 지 표준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표준이 완성되면서 WG2는 사라졌지만 최근 제품 단위로 환경성을 평가·비교하기 위해 표준 개정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다시 생겨날 것으로 전망된다.

WG3는 유해물질 측정 방법에 대한 표준을, WG4는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에 대한 표준을 담당한다. WG4는 사업장 단위가 아닌, 제품의 원료 채취부터 폐기까지 온실가스가 얼마나 배출되는 지 정량화 할 수 있는 표준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PT62542는 TC111의 표준과 IEC 환경 용어 등에서 사용된 정의·내용 등을 활용해 환경용어의 국제표준을 개발한다. PT62635/62650은 재활용 표준 프로젝트 팀으로, 재활용 가능률을 산정하고 제조업자와 재활용사업자간 정보 공유를 돕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도 TC111 활동에 나서

환경규제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관련 국제표준을 제정할 때 자국의 기준을 포함시키기 위한 국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TC111에 수많은 나라들이 참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TC111의 정회원으로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일본 등 28개국이, 참관국으로는 5개 나라가 참여하고 있다. 지난 2005년 15개국에 불과했던 참여국은 2012년 현재 33개로 늘어났다.

TC111의 의장은 처음 설립할 때 기여를 많이 한 일본이 맡고 있으며 총 4개의 WG는 미국·독일·일본 등의 주도 하에 다양한 나라들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TC111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4개 WG에 모두 참여하고 있으며 재활용 프로젝트 팀인 PT62635/62650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2008년 제주도에서 열린 총회에서는 할로젠 유해물질 표준화와 재활용률 산정방법 표준을 새롭게 제안했다.

최근 브라질에서 열린 TC111 회의에서는 우리나라가 제안한 유해화학물질 2종의 시험분석방법이 국가 간 투표를 거쳐 승인됨으로써 국제표준으로 확정됐다. 기술표준원은 RoHS 환경규제에 대응해 규제 대상 유해물질인 할로젠과 프탈레이트에 대한 분석기술을 개발해 IEC에 제안한 바 있다. 이번 승인으로 내년 3월 IEC 62321-3-2 국제표준으로 등록될 예정이다.

기술표준원은 국내 전자업계, 한국섬유기술연구소 등과 분석기술을 개발했다. RoHS 규제대상 물질인 브로민계 난연제(PBB, PBDE)를 단시간·저비용으로 분석할 수 있으며 정확성, 정밀성, 효율성, 재현성, 신뢰성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TC111 참여는 활발한 편이지만 기업들의 직접적인 참여는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주로 정부와 산하기관,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등 관련 단체, 학계 등에서 회의에 참여하고 관련 정보를 기업과 공유하고 있다.

김 팀장은 “당초 환경에 대한 규제 때문에 표준이 만들어졌지만 앞으로는 표준이 규제로 작용해 기업에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며 “TC111과 관련해 기업들이 모니터링을 지속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TC111 워킹그룹(WG)별 역할(자료=지식경제부)

◆인터뷰/윤종구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 신산업표준과장

“국제표준 관련 활동에 기업들이 적극 나서야 합니다. 현실에 안주해서는 5년, 10년 후 살아남기 힘들 수 있습니다.”

윤종구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 신산업표준과장은 TC111과 같은 국제 환경표준 제정 작업에 국내 기업들이 활발하게 참여해 줄 것을 주문했다. 다른 나라가 주도해 만든 표준을 따라가기만 한다면 그만큼 불리한 위치에서 사업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윤 과장은 “국제무대에 나가 스스로 룰을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이 아직 부족하다”며 “표준 제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면 최신 트렌드 파악과 신규 아이템 창출 등에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참여를 위해 정부는 다양한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해외 출장을 지원하는 한편 대학교·연구소의 전문가를 발굴해 관련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돕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관련 활동이 단기간에 수익과 연결되지 않는 등의 문제로 기업들은 아직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윤 과장은 “기업의 참여 확대는 앞으로 풀어가야 할 주요 과제”라며 “보건, 안전 등에 대한 표준화는 정부 차원에서 수행하는 게 맞지만 제품이 직접 관계되는 부분은 기업이 나서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도록 하는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TC111과 같은 국제 환경 표준은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환경규제가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며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윤 과장은 “지속가능성장이라는 공동 목표 아래에서 관련 국제 표준화가 진행될 것이고 에너지다소비 국가인 우리나라도 여기에 대응해야 한다”며 “지금까지는 국제 표준이 기업이나 산업을 위해 생겨났지만 앞으로는 `사회적 기여`를 위한 표준이 계속 신설될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우리나라의 역할도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 10여년간 국제 표준 활동을 활발히 한 덕분에 인지도가 높아졌으며 국제사회에서 한국에 요구하는 바도 다양해졌다는 설명이다. TC111이 다루는 범위가 계속 넓어질 것으로 예상돼 앞으로 보다 다양한 분야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 과장은 “화학물질 시험분석 표준 등은 우리나라가 주도하고 있지만 특정 분야에 너무 편중돼 있다는 지적도 있다”며 “앞으로 TC111이 온실가스 배출, 환경경제효율 등 더욱 다양한 과제를 다룰 것으로 보이는 만큼 참여를 지속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소박스/RoHS는

TC111이 태어난 배경에는 RoHS(The Restriction of Hazardous Substances, 유해물질사용제한지침)가 있다. RoHS는 전기·전자제품 속의 납, 카드뮴, 크롬, 수은, 브롬계 난연제(PBBs, PBDEs) 등 6개 유해물질의 함유를 제한한다. 카드뮴의 경우 농도가 0.01%를 초과해서는 안 되며 나머지 5개 물질은 0.1%를 넘지 않아야 한다.

RoHS와 같은 엄격한 환경규제가 생기면서 관련 표준 제정에 대한 요구가 생겨나 IEC/TC111이 창설됐다.

RoHS는 유럽연합(EU)이 제품에 함유된 유해물질로 인한 폐전기·전자제품의 재활용 저해와 환경오염 방지를 위해 만들었다. 지난 2003년 폐전기·전자제품처리지침(WEEE)에 의해 제정·공포된 후 2006년 발효됐다. 대상품목은 EU 시장에서 생산, 판매, 수입되는 WEEE의 적용 품목 중 8개 품목군과 백열등, 가정용 조명 등이다.

중국은 EU보다 강화된 기준을 마련해 자국 공식기관을 통해 RoHS 인증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의 갤럭시S3가 중국 RoHS 인증을 받아 친환경 제품으로 주목 받았다.

RoHS 6대 규제물질의 인체유해성(자료=지식경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