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대담]강성모 KAIST 총장-김용민 포스텍 총장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수출 중심으로 경제부국을 이뤄왔다. ICT를 비롯한 섬유, 자동차, 콘텐츠, 게임, 석유제품 등이 유럽과 미국, 동남아 시장을 중심으로 `무역대국` 기조 아래 OECD 국가 중 돋보이는 경제성장세를 이뤘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대한민국은 이제 ICT를 기반으로 `창조적 질주본능`을 발휘해야 하는 시기에 다다랐다. 남을 따라가는 방식으로는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데 한계가 있다. 이에 전자신문은 신년특집으로 갑오년 새해 `질주본능 대한민국 해외로 나가자`라는 어젠다를 내놨다. 우리나라가 제2의 창조경제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들여다보자는 취지다. 우리나라 이공계 연구중심 대학을 대표하는 KAIST와 포스텍 총장의 대담을 통해 새해 과학기술과 창조경제의 핵심 축으로 떠오른 기술사업화, 인력양성, 창의성 교육 방안 등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신년대담]강성모 KAIST 총장-김용민 포스텍 총장

△참석자

-강성모 KAIST 총장

-김용민 포스텍(POSTECH) 총장

-사회: 전자신문 박희범 전국취재팀장

◇사회(박희범 전자신문 전국취재팀장)=연구중심대학, KAIST와 포스텍을 이끌고 있는 두 석학을 초청해 이공계, 창조경제, 산학협력, 창업 등 사회적 현안에 대한 담론을 풀어보려 한다. 우리 사회에 어떤 좌표를 제시할 것인지 궁금하다. 먼저 창조경제 아래에서의 인재론에 대해 풀어보자. 창조적인 인간형은 어떠해야 하는가. 창조적 교육 모델도 제시해 달라.

◇강성모 KAIST 총장=창조적 인재에게 꼭 필요한 가치는 투지와 열정이다. 아무도 도전하지 않았던 것, 혹은 많은 사람이 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는 무언가를 돌파해내려는 `투지와 열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식이 중요하다. 많이 알아야 한다. 물론, 공부를 많이 하는 것과 창의성을 갖추는 일은 별개의 문제다. 하지만, 지식이라는 기반이 없이는 세상을 움직일만한 `새것`을 만들어낼 수 없다.

◇김용민 포스텍 총장=맞다. KAIST나 포스텍은 훌륭한 학생을 배출해야 하는 미션이 있다. 그들이 지성, 인성, 도덕성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음으로 영감, 동기 부여가 중요하다. 어렵지만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열정을 갖고 어려운 문제를 태클하는 학생들의 도전정신이 합쳐져야 한다.

그래야 정말 남과 다르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에서 배워가면서 정진해나가는 그런 학생을 배출해낼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이 사회에 나가서 과학자나 연구자가 돼서 10~20년 꾸준히 했을 때, 또 해 낼 수 있다는 역발상을 갖고 성공했을 때 그것이 국가의 큰 경제 임팩트로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이게 바로 21세기 연구중심대학의 미션이라고 본다.

◇사회=현재 우리나라가 창조형 인재를 교육시킬 수 있는 시스템 갖추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어떤 방향으로 시스템 만들어야 하나

◇김용민=어려운 질문이다. 한국에 와서 느낀 점은 입학생 질은 좋은데 졸업할 때 학생 포텐셜이나 경쟁력은 세계 유수대학에 비해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건 대학에서 뭔가 잘 못 가르치고 있다는 거다. 창의적, 도전적 인재를 양성하는데 우리가 잘못하는 게 아닌가, 그걸 바꾸려면 대한민국 시스템이 교수 중심 티칭에서 학생 중심의 러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교육이 클래스룸에서만 이뤄지는게 아니라 바깥 어디에서든 이뤄지고, 교수가 학생의 롤 모델이 돼야 한다. 그런 걸 바꾸려고 하는데 제도적으로 바꾸기 쉽지 않다, 문화적으로 어렵다.

◇강성모=우리나라 교육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담`이다. 일례로, 우리나라 문화에서 교수는 높은 분이라는 고정 관념이 있다. 내가 언젠가 한 번 조교수한테 `지금 당신 앞에 앉아있는 교수의 이름을 불러봐라. 성이나 직함을 떼고, 이름으로만 불러봐 달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그렇게 못 하더라. 직함이나 계급은 행정적인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방법의 분류도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함께 연구하는 `학문의 동반자`적 입장에서는 서로가 가진 담을 허물고, 동등한 입장에서 교류하는 소통 방식이 필요하다. 힘들어도 지금의 사회 문화를 깨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피라미드형 문제 해결 시스템이 있다. 어떠한 일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가장 밑바탕에 열정(Passion)이 있어야 하고, 각 사람의 다양한 열정을 존중하는 문화(Culture)가 정착돼 있어야 한다. 다음 단계가 신임하는 파트너(Be a Trusted Partner)다. 나는 남에게 믿음직한 동반자가 돼주어야 하고, 나 역시 그런 사람을 주변에 둬야 한다. 그 다음이 중요한데 높은 가치를 지녔거나 지속성을 가지는 문제를 찾아내야 한다. 학생과 교수 스스로 고민하고 문제를 찾아내려는 시도가 중요하다.

◇김용민=담을 무너뜨려야 한다는데 동감한다. 대학에 보이지 않는 담이 너무 많다. 교수와 학생 간, 교수와 교수 간, 학과와 학과 간, 대학교와 지역사회 간, 대학교와 다른 대학교 간 담은 더 높다. 대학의 미션(교육봉사연구)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담을 높게 둬서는 안 된다. 협업하고 다른 기관끼리도 서로 협업할 때 학생도 이걸 보고 잘 해야 겠구나라는 모티베이션이 생긴다고 본다.

◇사회=사회 시스템에 창조경제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다고 보는가.

◇강성모=창조경제의 근간은 도전 정신과 하면 된다는 정신이다. 유대인들의 후츠파 정신처럼 말이다. 헌데, 우수한 교육을 받은 고급 두뇌들이 정부, 교원 등 안정적 직업만 원하는 현실이 나는 안타깝다. 이래서는 창조경제가 일어나기 쉽지 않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일자리 수요가 많은데 안정성이나 처우 등을 비교해가며 지원하는 것을 꺼린다. 이런 문제를 우리가 해결해야 할 것 같다. 성공적인 창업 사례들을 꾸준히 배출해서 경제 활동의 주축이 될 사람들에게 도전 정신과 하면 된다는 정신을 심어주는 것이 창조경제 시대에 대학이 감당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김용민=과학기술자만이 정말 진정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고 본다. 그런데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서 안주하려는 경향이 너무 강하다. 도전적이고 위험을 감수하고, 인류 삶의 질을 높이는데 높은 꿈 가지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연구하고 독자적인 연구의 길을 가는 학자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사회 문화 가치관도 바뀌어야 한다. 산학연관에서 산학이 유기적으로 잘 안 이뤄진다. 중요한 문제를 풀 때 실패할 가능성이 많지만,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벤처산업이나 신산업을 창출할 연구를 하고, 기업에서는 지원을 해야 한다. 기업과 대학이 서로 어렵더라도 마케팅 정보를 공유하는 등 기술 사업화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 지금처럼 아주 단기적인 연구만으로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성과가 나오기 쉽지 않다.

◇강성모=대학은 창의인재를 양성하고 창의적인 연구 과제를 사업화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이런 프로세스를 관리하는 정부가 우선 열린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 지금 현재 상황을 보면 서류에 쓰여 있는 것만 해야 한다. 정부 담당자가 자신감도 있고, 해당 지식도 있고, 권한도 있어서 능동적으로 지원해줘야 하는데, 윗사람 눈치 때문에 규정 안에서만 판단하려 든다. 잘못되면 질책 받을까 싶어 질질 끌면 절대 안 된다. 이것은 우수한 인재나 사업들을 우물 안에 가둬놓는 것과 마찬가지 일이다.

◇김용민=정부 역할은 이상적으로는 아무것도 안하는 게 맞다. 큰 방향을 제시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빨리 시작할 수 있게 처음에 푸시하고, 지속할 수 있게 놔둬야 하는데 너무 타이트하게 컨트롤하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한국 과학기술계가 너무 정부에 의존한다. 어떤 문제가 있으면 풀어 달라, 제도 만들고 펀딩 달라 하는 경향이 있다. 내 생각은 밑에서 바텀업으로 대학이나 과학기술계가 바뀌지 않으면 변화가 없다. 과학기술계도 정말 21세기에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고민하고 노력하며, 이와함께 정부의 제도나 지원이 이뤄질 때 산학관민이 유기적으로 될 수 있다.

◇사회=미래부가 전면에 나서서 창조경제 실현에 나서고 있다. 과학기술이 베이스가 돼야 한다는 여론도 있는데, 미래부 역할은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나.

◇강성모=산업부나 미래부의 역할은 `어떻게 하면 창조적 사업을 실현시키는가?`인데 학교나 사회에 `무조건 개발해서 시장에 내놔라`하고 요구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현재 시장의 동향이 어떻고, 대중의 요구가 어떤 것인지 발 빠르게 파악하고 지원하는 업무를 관이 주도해야 한다. 또, 미래부나 산업부 같은 정부 부처 내에서도 벽을 허무는 게 중요하다. 부처 간의 업무 공유를 통해 효율성을 높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김용민=기술의 성공이 상업화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제일 중요한 게 세 개다. 유니크한 기술, 매니지먼트, 파이낸싱이다. 이 모든 게 맞물렸을 때 벤처가 성공할 확률이 높다. 기술만으로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강성모=창조경제를 잘 하려면 경제, 매니지먼트, 파이낸싱하는 사람과 다 같이 해야 한다.

◇사회=대학과 산업계 상생 방안에 대해 논의해보자.

◇김용민=대학 넘버원 미션은 미래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는 것이다. 좋은 교육과 훈련을 받은 학생이 사회에 나와 훌륭한 엔지니어가 되거나 좋은 연구자가 되면 이것이 바로 대학의 기여다.

대학에서 연구하는 게 여러 목적이 있지만, 대학원생이 독립적인 학자가 되기 위해서 하는 일부 트레이닝이라고 봐야 한다. 연구하면서 독립적으로, 창의적으로, 도전적으로 연구해본 경험 있는 졸업생이 졸업하고 산업계에 간다면 창의적 인재가 될 것이다. 또 정말 획기적인 연구결과 나왔다 했을 때 산업에서 상품화하면 제일 좋은데 그게 정말 쉽지 않다.

한국에서는 산학관계가 산이 마스터고, 학이 머슴같은 불평등한 관계인 경우가 많다. 그걸 동등하게 바꾸기 위해서는 양측이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고, 존경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강성모=학교와 산업계가 서로에게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KAIST는 산업체 CEO, 우리 학교 교수님들, 또 학생들이 참여하는 토론의 자리를 마련해볼 계획도 가지고 있다.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것은 결국 우수한 인재다. 누가 어떤 분야에서 우수한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교수다. 산업계가 좋은 인재를 발굴하고 선점하기 위해서라도 학계와의 소통, 더 구체적으로 교수와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교수 연구를 도와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김용민=한국 기업에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연구중심대학 학생을 위한 조건 없는 장학금이 필요하다. 그래야 위험성이 큰 연구를 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사례를 많이 봤다. 실패해도 마음껏 연구해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창조경제의 넘버원은 인재다. 기업체가 연구중심대학에 위험이 큰 연구를 해보라고 주문할 수 있어야 한다.

포스텍은 한국에서는 잘 한다고 평가하지만 세계 톱 수준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창업 파이프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밑에 연구기획단계서부터 고부가가치 기획을 잘 해야 한다. 또 학생이 실패가 두려워서 못하겠다가 아니라 용기, 자신감, 역량을 갖고 좋은 기술 개발에 성공해서 들고 나왔을 때 학교에서 제대로 보육할 수 있고, 한걸음 더 나아가 기술지주회사에서 투자하고, 라이선싱 등을 할 수 있도록 전 주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학교나 정부, 기업체에서도 신경 많이 써야 한다.

◇강성모=대학이 갖는 잠재력이 크다. 각 부문에서 100점짜리 역량을 가진 학생을 모아놓으면 좋은 연구성과가 나올 수 있다. 한 학생이 잘하는 분야를 계속해서 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정책이 창의 인재 양성에 가장 필요하다.

KAIST는 수업료 징수 기준이 되는 학점 규정을 완화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인재들을 학점이란 기준에 너무 묶어 놓으면 국가 손실이다.

◇김용민=대한민국 대학 중에서 세계를 선도 하는 대학이 10년이나 20년 후에 몇 개라도 나오길 바란다. 탁월한 교수 밑에서 영감을 갖고 제대로 지도 받은 학생을 배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창조경제에서 문제를 잘 푸는 학생보다 문제를 잘 만들어내는 학생이 필요하다. 졸업생 중에 프로페셔널하게 성공한 학생을 보면 대학학점과 상관관계가 없다. 한국에서는 너무 학점 위주다.

◇강성모=실패에 대해 관용하고 관대해져야 한다. 말만 아니라 실천해야 한다. 국제화를 더 많이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국제화 수준에 많이 못 미쳐 있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영입해서 같이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갈수록 세계 경쟁이 심해질 것이다. 실패에 관대하고, 다양한 문화의 사람을 포용하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으면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도 우려할만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우리가 공동으로 마음을 모으면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날 수 있다. 벽을 확 트고 편안하게 하는 사회 문화를 조성한다면 앞으로 우리나라 문화는 밝다고 본다.

◇사회=KAIST와 포스텍은 우리나라 이공계 대표 대학이다. 두 대학의 기술사업화 성과나 정책을 들여다보면, 대학 성장의 본보기로서 상당한 시사점이 있을 것으로 본다. 얘기해보자.

◇강성모=KAIST는 2009~2013년까지 207건의 기술이전 계약을 성사시켰다. 약 125억원의 기술이전료를 징수했다. 최근 5년간의 성과만 따졌을 때의 수치다. 또, KAIST는 국내 최대의 창업 보육 기관을 산하에 두고 있다. 총 471개 기업을 보육해서 57%의 생존율을 기록하고 있고, 생존 기업의 2011년 총 매출액은 2조957억원 정도가 된다. 또 코스닥에 상장된 11개사의 매출액은 5600억원 규모다.

◇김용민=기술사업화는 시간이 좀 걸린다. 단기간에 되는 것도 아니다. 문화를 바꿔나가야 한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학술적 연구만 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정말 하이 리스크 하이 임팩트부터 시작해야 한다. 기업가 정신이 캠퍼스에 넘쳐나야 한다. 교수들이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연구가 성공해서 이를 사업화해 세상에 기여할 때 임팩트가 크다고 본다. 지금까지 아주 획기적이고 세계적인 결과가 많이 나오기는 하는데 어렵고 긴 상품화로 가는 죽음의 계곡을 통과한 사례는 많이 안 보인다. 대학 미션 중 하나가 기술 연구이고 이게 사업화가 돼야 인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쓸 수 있다. 한국 대학이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기업가 정신을 가치 있게 여기고, 고위험 연구에 대한 성실한 노력과 협업을 통한 융합연구를 장려하는 문화와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사회=기술 사업화에 대한 문제점을 꼽는다면?

◇강성모=KAIST 연간 로열티 수입은 35억원 내외다. 건당 수입은 1억원 이하로 해외 대학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MIT는 건당 로열티 수입액이 10억원 내외로 알고 있다. KAIST도 질 좋은 특허를 많이 만들어 해외특허출원을 강화하려고 한다. 국내 시장은 너무 작다. 글로벌 시장에서 활동하면 KAIST 기술 이전 수입도 많아질 것이다. 한편, 대학의 기술사업화를 로열티 수입 창출의 창구로 보는 것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다. 과학기술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해야 한다는 공익적 개념을 중시하는 게 세계적 추세다.

◇김용민=연간 로열티 수입이 20억원이다. 2000억원 연구개발해서 들어오는 건 전체의 1%밖에 안 된다. 연구 개발비에 비해 참 많이 모자란다. 아이디얼하게 5%까지 가야 외국 유수 대학과 경쟁할 수 있다. 미국 리딩 대학의 경우 로열티 들어오는 것을 보면 싱글로 쳐서 들어오는 것보다는 홈런으로 들어온다. 많은 경우 약이나 신약 개발로 들어온다. 몇 억이나 몇 십억도 들어오면 좋지만 이건 싱글이고 더블이다. 홈런이 돼서 수천억원 정도 들어와야 한다.

단기적인 성과에 치우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플로리다대 게토레이, 콜롬비아대 에포젠 신약 같은 대학을 대표하는 글로벌 대형기술이전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사회=우리나라는 단기 성과 위주다. 이런 시스템 아래서 제대로 풀어갈 수 있을까.

◇강성모=세계 시장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성취하려면 장기적인 안목과 투자, 그리고 기다릴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 기술사업화는 물론이고 대학 발전도 마찬가지다. 2010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안드레 가임이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연구원들과 엉뚱한 실험을 했다. 얼마나 엉뚱했냐면, 개구리를 자기장 속에 넣어서 공중부양시키는 실험을 한 적도 있다.

이 실험으로 괴짜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이그노벨상을 받았고, 유연한 사고로 즐거운 연구를 거듭한 결과 2010년 실제 노벨상의 영예를 안았다. 나도 우리 학교 구성원들에게 독특하고 혁신적인 방향의 연구를 권장하고 싶다. 하지만 이런 연구는 흔히 말하는 대학 랭킹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에서 혁신을 기치로 내걸고 출범한 신생 대학들도 랭킹에 신경을 쓰다가 평준화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총장의 자리에 있다 보면 `랭킹`이라는 잣대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과를 요구하는 외부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내가 총장으로서 가지는 딜레마 중 하나다. 단기 과제와 장기 연구 과제를 적절하게 배분하고 일관성 있게 지원하는 정책이 수반돼야 하고, 과학자들의 연구가 성과를 내기까지 기다려줄 줄 아는 사회 분위기도 마련돼야 한다.

◇김용민=IT분야는 단기적으로 가능할 수도 있지만, 소재나 바이오 쪽은 중장기 쪽으로 어프로치해야 한다. 시기가 문제다. 너무 일찍 상품화를 해서 실패한 경우도 있다. 연구소에서 1~3년 정도 더 보완하고 리스크를 줄인다면 상품화 가치가 훨씬 높아질 것이다. 상품화하기 위해 기업체로 넘기게 되는데 결국은 위험 부담을 어떻게 줄이느냐가 문제다. 기업가의 성공 경험을 토대로 트렌드를 보고 비즈니스 모델 만들어야 한다. 연구자 생각과 기업인의 생각은 다른 경우가 많다.

◇사회=KAIST와 포스텍은 기술사업화 시스템을 어떻게 갖추고 있는가.

◇강성모=KAIST는 1994년 무렵부터 기술 사업화와 창업을 지원하는 KAIST 산학협력단을 운영해오고 있다. 기술사업화센터에서는 대학 기술과 기업 간의 효과적인 소통을 바탕으로 기술이전을 활성화시키는 일을 하고 있고, 창업보육센터에서는 학생 창업을 강화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회사들을 우수 기업으로 육성하고 더 나아가 글로벌 창업의 플랫폼을 구축하는 사업을 현재 진행 중이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혁신과 기업가 정신을 촉진해갈 계획이다. 글로벌 기업을 육성해 제2의 벤처 중흥을 선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용민=포스텍은 설립 때부터 포스코와 포항산업과학연구원으로 이어지는 산학연 협력체제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기술사업화를 전담하는 기술사업화센터라는 별도의 전담 행정조직이 있다. 기술지주회사가 있고, 포항테크노파크도 있다. 창업지원조직도 있고, 있을 건 다 있다.

또, 포스텍 구성원과 출신동문들이 창업한 50여개 벤처기업이 참여하는 협의체 APGC(Association of POSTECH Grown Companies)가 작년에 만들어져 경영자문, 멘토링, 엔젤투자도 해주고 있다. 동문 선배들이 모교와 후배의 창업과 기술사업화를 돕기 위한 다른 대학에서는 볼 수 없는 유니크한 협의체다. 그런데 아무리 조직이 있어도 콘텐츠가 좋아야 시스템적으로 유기적으로 돌아가지 콘텐츠가 별로이면 아웃풋도 적을 수밖에 없다. 창업은 파이프라인이라고 본다. 좋은 연구자들이 창의적이고 하이 리스크한 연구에 성공하고, 그래서 파이프라인이 차야 한다. 그런데 시간이 걸린다. 벤처를 만들어도 은행의 융자 담보 시스템 하에서는 도전적으로 창업을 해보라고 적극 추천하기가 힘들다. 정부가 리드를 해서 풀어줄 수 있다고 본다. 포스텍은 창업뿐만 아니라 연구 성과의 활용과 확산을 위한 라이선싱 조직의 선진화를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사회=연구를 하면 노벨상이 따라와야 한다고 한다. 노벨상을 내기 위한 어떤 프로젝트 시스템을 갖고 있는가.

◇김용민=일반적으로, 노벨과학상을 수상하기 위해서는 `3S`라고 해서 인류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연구결과를 뜻하는 Significant(유의미한), world-first(세계 최초)의 뛰어난 성과라는 Singular(탁월한), 그리고 Strategic(전략적)이 수반되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노벨상을 목표로 하는 시스템을 꾸린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수월성을 추구하기 위해 우수하고 수준 높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 미래 글로벌 리더 양성에 집중하면 수상에 가까워질 것이라 본다. 교수와 대학원생, 학부 학생들이 같이 연구하고, 가르치는 과정에서 정말 남들이 생각할 수 없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역발상으로 가는 길이 참 어렵고 힘들다.

큰 문제는 연구비다. 연구비를 놓고 보자. 연구자가 역발상으로 어찌 보면 무모해 보이는 도전적인 계획을 세워 갔을 때 지원을 받기가 지금까지는 어려웠다. 평가위원들이 불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러한 평가시스템이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과학기술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평가자들이 퀄리티를 중심으로 평가해야 한다. 연구에 리스크 테이킹도 필요하다. 포스텍같이 소수정예인 학교는 교수가 300명도 되지 않는다. 반면에 존슨홉킨스 대학은 교수가 3000명이 넘는다. 양으로 경쟁해서는 안 된다.

우리 장점을 극대화하고 역발상으로 갔을 때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 인류가 직면한 거대 이슈에 대해 학과 간 벽을 없애고 협력하고 과감하게 도전하고 융합연구를 해나가야 한다.

세계적으로 노벨상은 가속기를 이용한 연구자들이 받은 경우가 많다. 포항에 4세대 가속기가 만들어지면 10년 내에는 그런 장비를 이용한 연구자가 노벨상을 받지 않을까 싶다.

◇강성모=KAIST는 `인류를 위한 지식 창출 및 인재 양성`이라는 사명 아래 `세계를 선도하는 과학기술의 중심`을 비전으로 삼은 학교다.

이 비전을 위해 연구에 정진하다 보면 노벨상은 부수적으로 따라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년에 나고야 대학에 방문한 적이 있다. 나고야 대학은 노벨상 수상자를 네 명이나 배출한 학교다. 하마구치 미치나리 총장이 한 말이 나고야 대학에는 학문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신념을 가진 좋은 스승이 있었고, 젊은 학자들이 자립하여 연구할 수 있는 학풍을 조성하기 위해 힘썼다고 했다. 결국엔 그런 것이다. 좋은 학자들이 꾸준히 노력하면 그 연구 결과가 축적되어서 세상이 주는 영예도 따라오는 것이다. 매년 가을이면 `왜 대한민국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는가?`하는 질타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노벨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 노벨상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지름길인지도 모른다.

◇사회=요즘 가장 큰 현안은 무엇이 있나.

◇강성모=KAIST는 제2의 도약을 위해 지난해 말 중장기 발전 계획을 발표했고, 원스톱 창업지원프로그램인 스타트업 KAIST의 시동을 걸었다.

우선 중장기 발전 계획은 학문적 수월성과 창의성을 갖춘 융합형 글로벌 인재 양성·지식경제를 견인하는 세계적 연구·나눔과 협력에 기반한 글로벌 캠퍼스 구축·지속성장을 위한 KAIST 구축 등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도약의 뜻을 다지는 의미로 새로운 UI도 개발 중에 있다. 뿐만 아니라, 창업 지원 프로그램인 스타트업 KAIST도 본격 구동에 들어갔다. 오는 3월이면 678㎡(약 205평) 규모의 `스타트업 KAIST 스튜디오`가 문을 연다. 이곳은 공동창업실과 창업동아리방, 아이디어 회의실, 카페 등으로 사용될 것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 내실화를 다지고 지속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김용민=올해로 개교한지 28년째가 된다. 그동안 포스텍은 제1 도약에서(개교 후 처음 25년) 성공했다고 본다. 1980년대 중반에 한국에 연구중심대학을 만든다고 했을 때 한국, 더군다나 포항 같은 지방에서는 안 된다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가망성이 없다고 애기했는데 우리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

그렇게 함으로써 연구중심대학의 롤모델이 됐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한국 리딩대학들이 비슷해졌다. 그렇다고 세계 선도대학 중 하나인가 보면 그건 아니다. 포스텍은 처음부터 칼텍이 롤모델이다. 어떻게 하면 칼텍같은 대학이 될 수 있을까. 제일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탁월한 교수진과 그 교수 밑에서 교육과 트레이닝 받은 아주 훌륭한 졸업생이다. 학생들이 졸업 후 20, 30년이 지났을 때 그 크레디트가 학교로 돌아온다. 우수한 졸업생을 배출해내는 대학이 돼야 한다. 그들이 졸업 후 최소한 10년, 20년간 역경을 헤쳐 나가고 실패에서 배워가면서 자기 꿈을 이루었을 때 그 대학은 글로벌 대학이 된다.

2014년에는 세계 수준 대학으로의 기반을 닦도록 문화를 바꿔나가고, 학과가 중심이 되는, 즉 바텀업(Bottom-up) 발전전략을 실행에 옮기려 한다. 그리고, 2012년 지역발전에 실질적인 보탬이 되고자 포항지역 상공인 등 리더들과 함께 어드밴스 포항(Advance Pohang) 포럼을 만들어 매달 모여 강의도 듣고 토론도 한다. 작년 여름에 시애틀과 피츠버그를 벤치마킹해 철강산업 위주의 포항의 미래해법을 찾아보기도 했다. 이렇게 지역경제 다변화를 꾀하고 지역발전의 거점이 되고 기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정부가 내놓은 창조경제의 핵심은 뭐니뭐니 해도 일자리다. 정부의 벤처육성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용민=너무 지나치게 벤처 창업을 권장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본다. 기술의 상품화는 라이선싱하는게 창업하는 것보다 더 빠르다. 연구를 하기 위해 벤처 창업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창업할 때 시장을 살펴보고 독특한 틈새시장을 본 후 향후 3~5년 내 할 수 있겠다, 마켓 셰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겠다 하는 확신이 설 때 해야 한다. 창업은 쉽지만 퀄리티가 중요하다. 창업하기 전에 원천적으로 기술을 특허로 보호해야 한다. 또 중장기적인 베스트 성과를 기대해야지 단기성과에 치중해서는 안 된다.

◇강성모=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벤처를 담당하는 정부 부처의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 KAIST는 엔드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미식축구에서 골라인을 향해 질주하는 엔드런(end run)에서 따온 이름인데, 좋은 창업 아이디어가 있을 때는 그것을 바로 사업화할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엔드런으로 질주하려고 해도 행정 절차가 가로막을 때가 있다. 세상에 없던 가치를 만들려고 하는 창의적인 사람들에게 `기존에 있는 규칙만 준수해라, 서류에 쓰여 있는 대로 맞춰 와라`하는 식이다. 이런 점은 개선해야 한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한쪽만 창의적이어서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사회=대학마다 현안이 된 신입생 선발에 대해 얘기해보자. 어려운건 없나.

◇김용민=포스텍 학부생은 어디다 갔다 놔도 잘하면 잘했지, 떨어지지 않는다. 단, 졸업생 포텐셜은 세계를 리딩하는 대학에 비교해서 떨어진다. 많은 학생들이 실패를 두려워한다. 너무 틀 안에서 교육 받았기 때문에 창의성을 길러주지 못한다. 인력 수급은 문제 되지 않는다.

포스텍은 입학사정관제가 잘 정착된 편인데, 줄 세우기 방식을 탈피하고 학생들안에 숨어있는 잠재력과 재능, 꿈과 열정을 평가하고 선발에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포스텍은 캠퍼스 내에서 교육, 연구, 생활이 모두 이루어지기에 교육과 연구를 잘 할 수 있는 정말 아이디얼한 환경이다.

서울 중심적인 생각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대기업이 어떤 연구소를 세울 때 서울 중심에 많이 세우는데 지방에 연구중심 대학을 기점으로 세워주는 게 지방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 지방 경제가 제조업 중심에서 창조경제 위주로 바뀌어야 하는 시점에서 이 문제는 무척 중요하다.

◇강성모=2014년도 신입생 모집 결과 지난해보다 지원자가 500명 이상 늘었다.

총장인 나도 지난해 7개 고등학교를 직접 방문해 학생 모집에 참여했다. 입학생의 70% 내외가 영재학교와 과학고의 상위권 학생들이다. 우수한 인재 선발이 곧 대학의 경쟁력이다. 신입생 선발도 중요하지만 입학 후 교육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겠다. 이공계 기피 현상을 우려하는 시선이 많은 것도 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과 합의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이공계 연구자로서의 밝은 미래를 제시하는 것이 학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스타트업 KAIST`를 통해서 구현하고자 하는 가치기도 하다.

◇사회=마지막으로 강 총장 및 김 총장께서 보시는 과학기술계 풍향이나 기술사업화, 대학, 나아가 사회현상 등을 망라한 내년 전망을 4자 성어로 나타내 달라.

◇강성모=법고창신(法古創新)이다. 연암 박지원 선생의 `초정집서`에 나오는 말로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한다는 뜻이다.

“옛것을 본받는 사람은 낡은 자취에 얽매이는 것이 병폐요, 새것을 만드는 사람은 법도를 벗어나는 것이 걱정이다. 옛것을 본받되 변통할 줄 알고, 새것을 창조하되 근본(根本)을 잃지 말 것”을 강조한 말이다.

◇김용민=물멸대안(物滅大安)이 어떤가. 자기 몸에 나쁜 것을 죽이고(物滅) 다시 태어난다(大安)는 뜻이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단기간의 고통을 인내하고 개인만의 이익을 좇기보다는 국가와 인류의 미래를 위해 협력하고 노력하며 도전해 나가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물멸대안을 제시하고 싶다.

정리=신선미 기자 sm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