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부품칼럼]액정 소재의 재발견

[소재부품칼럼]액정 소재의 재발견

무한경쟁의 글로벌 시대에 우리나라 경제의 대외 종속을 탈피하고 지속적 성장을 견인할 핵심으로 소재산업을 꼽고 있다. 이제는 소재산업의 육성 없이는 완제품 위주의 제조업만으로 더 이상 성장 잠재력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재분야에서 우리 경쟁력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그 해답은 미래의 거울이라는 역사 속에 숨어 있다. 한국이 세계 1등 국가로 우뚝 선 액정디스플레이(LCD) 핵심 소재 ‘액정’을 예로 들어보겠다. 액정이 핵심 소재로서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살피고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정책적 측면을 짚어보자.

최초의 액정은 1888년 오스트리아의 식물학자인 라이니처(Reinitzer)가 우연히 콜레스테롤 유도체가 온도변화에 따라 물처럼 맑은 상태에서 혼탁한 상태가 되는 현상에서 발견했는데, 그 당시에는 단순히 비등방성(anisotropic) 액체 정도로만 알았을 뿐이었다. 1949년 물리학자 온사거 (Onsager), 1956년 화학자 플로리(Flory)에 의해 두 가지 대표적 이론이 정립되면서 새로운 물질 합성과 기초과학 현상 발견, 이들의 응용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지금의 LCD 산업이 출현했다.

100여년 전 ‘흐르는 결정(flowing crystal)’으로 불렸던 액정의 과학적 발전, 핵심소재로서의 역할 및 파생기술을 통한 경제적 가치 창출과정을 현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가장 큰 틀에서 기초연구-응용개발연구-신산업 창출의 각 단계가 서로 독립적으로 추진되지 않고 연속적인 교집합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세계적 학문적 성과가 그 자체로 머물러 있어서는 미래 유망산업 창출에 직접적인 보탬이 되지 못한다.

당시, 학문적 측면에서 액정은 유체성(fluidity)과 결정성(crystallinity)을 동시에 가진 중간 상태로서 새로운 과학적인 이해가 필요했다. 액정은 긴 분자들이 어느 한 방향으로 배열되면서 층상 구조를 가지기도 하는 유체다. 이 점이 다른 물질과 가장 큰 차이이며 장점으로 작용한다. 이를 활용해 1960년대 들어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액정이 합성됐다. 고분자 액정에서 사출한 케블러 같은 고강도 섬유, 계면활성제,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tobacco mosaic virus)와 생체분자 등 다양한 분야로 액정 연구가 확장됐다. 이러한 응용개발연구로부터 가장 성공적인 신산업 창출의 예가 바로 LCD산업이며 더 나아가 최근에는 생체모방, 인쇄전자, 패션디자인 산업에도 액정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비단 액정만이 아니다. 액정과 같은 소재 분야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융합기술로 무장하게 된다면 우리나라 조선·자동차·반도체·디스플레이·휴대폰 등 전체 주력산업이 재도약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우리나라 연구개발 정책이 여전히 기초연구-응용개발연구-상용화 단계가 정부부처별로 혼재해 있다.

정책의 실제적 성과와 국민경제 기여도보다는 해당부처의 단기적인 과도한 실적위주로 추진되고 있는 점이 아쉽다. 비록 현정부 들어 부처 간 칸막이 제거를 통한 협업이 강조되고는 있으나 긴 호흡의 기초과학과 교육에서부터, 학문적 발견의 새로운 응용분야, 응용제품 개발과 신시장 창출로 이어지는 일련의 체계적이고 유기적인 정책 흐름은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우리나라에서 달성했다는 세계적인 학문적 성과에 대한 언론 홍보는 수없이 많았지만 과연 그 성과가 얼마만큼 산업적·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왔는지는 의문이다.

정부가 새로 출범할 때마다 막대한 연구개발비가 투입됐던 지난 정부의 대형 국책사업을 면밀한 검토 없이 재조정하는 관행을 타파해야 한다. 사업추진 초기부터 대학의 기초과학 및 공학 응용분야, 관련 연구소, 민간 대·중소기업의 공동 참여와 역할분담, 동시에 상호간 실제적 기술교류 활성화 등이 지속되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사업완료 이후에도 지속적인 성과확산과 기술축적이 이뤄지고 관련기술의 기업 이전으로 창조경제의 꽃을 피워야 할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의 정책적 시행착오나 계층 간 갈등이 없이 우리나라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 선진국형의 사회적·산업적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신두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sidlee@plaza.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