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보는 과학뉴스]꿈의 신소재, 알고보니…"꿈 깼네"

탄소나노튜브(CNT)는 이른바 꿈의 신소재로 불린다. 열 전도율이 자연계 최고인 다이아몬드 수준이고 전기 전도도는 구리와 비슷하다. 강도는 강철보다 100배 강하지만 속이 비어 있어 가볍고 유연성이 뛰어나다. 탄소섬유는 1%만 변형해도 끊어지는 데 반해 CNT는 15%나 변형을 가해도 견뎌낸다.

연구진이 밝혀낸 탄소나노튜브 구조. 원통형이 아닌 나선형으로 성장한다.
연구진이 밝혀낸 탄소나노튜브 구조. 원통형이 아닌 나선형으로 성장한다.

이 때문에 1991년 처음 발견된 이후 관련 연구가 꾸준히 이뤄졌다. 반도체와 평판 디스플레이, 배터리, 섬유, 생체 센서, 브라운관 등 응용 분야가 무궁무진할 것으로 기대됐다. 특히 CNT로 반도체 칩을 만들면 테라바이트급 집적도를 구현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이 꿈이 높은 장벽에 부딪혔다. CNT 구조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반도체 성질도 담보할 수 없게 돼 CNT를 활용한 전자소자 개발에 제동이 걸렸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원장 이병권) 이재갑 박사가 주도한 국제 공동연구진은 단일벽탄소나노튜브(SWNT)가 그래핀 원통이 아닌 나선체 구조임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고분해능전자현미경과 원자현미경으로 발견한 ‘마디(Nodal) 조직’을 근거로 내세웠다.

SWNT가 외관상 원통형 튜브처럼 보이더라도 지그재그 구조를 갖는 그래핀이 나선형으로 자랐다면 튜브 벽에 나선형 틈이 존재한다. 연구진은 나선형 틈 때문에 생긴 마디 조직을 발견해 SWNT가 원통형 튜브가 아닌 나선체임을 밝혔다. 20년 넘게 이어져온 ‘탄소나노튜브=원통형’이라는 공식이 깨진 셈이다.

나선형 구조에서 전기적 특성을 제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나의 튜브 내에서도 원자 단위 조직이 위치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지금까지 일부 확인된 반도체 성질도 나선 구조 때문에 생긴 결함으로, 격자 변형이 전자 이동을 왜곡시킨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지그재그 그래핀은 도체 성질을 띠므로, SWNT 역시 반도체가 아닌 도체 특성만 보이는 것이 정상이다.

지난해에는 다중벽탄소나노튜브(MWNT)도 원통이 아닌 흑연 나선체임이 밝혀져 두 가지 탄소나노튜브 모두에서 원통형 구조 공식이 깨졌다. 지금까지 CNT 상용화 연구가 번번이 벽에 부딪혔던 이유도 이 공식을 전제로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연구진 설명이다.

다만 전자소자 이외의 분야에서는 활용 여지를 남겼다. CNT가 원통형이라면 90도 이상 구부릴 수 없지만 나선형이라면 좀 더 자유로운 가공이 가능하다. 이 특성은 고강도 복합소재 제작에 응용할 수 있다.

이재갑 박사 외에도 김진규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박사, 민봉기 영남대 박사, 이경일 KIST 박사, 김용일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박사, 안계혁 한국탄소융합연구원 박사, 존 필립 영국 헤리엇와트대학교 교수가 연구에 참여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