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부품칼럼]미·중·일 삼각편대와 우리의 기술혁신

최근 우리 제조업은 두개의 블랙홀에 휩싸여있다. 미국 구글의 소프트웨어(SW) 블랙홀과 중국의 부품 블랙홀이다. 여기에 두 국가에 축적된 금융 자본은 각각의 블랙홀로 다른 국가들을 빨아들이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유현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책임연구원
유현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책임연구원

중간재를 주로 생산하는 한국 중소업체들은 위기에 처했다. 값싼 제품부터 초고가 명품에 이르기까지 모두 쓸어 담는 중국발(發) 황색 태풍 경고는 예상보다 더 빨리, 더 크게 한반도를 덮쳤다. 그나마 대규모 완성품 업체는 유무형의 플랫폼과 자본으로 이에 대처하겠지만 대다수 중소기업은 중국 뉴스에 하루하루 가슴을 졸인다.

중국의 어마어마한 내수 시장을 고려했을 때 세계 시장은 미국의 SW, 일본의 소재, 중국의 부품·완성품으로 재편될 우려가 크다. 이 삼각편대는 구조적으로 견고해서 일단 형성되면 깨기 어렵다. 이 와중에 한국의 부품산업은 쏙 빠져 있다.

이쯤에서 기술혁신의 의미를 되짚어보자.

순수과학은 고대의 관념·무지라는 벽을 깨면서 ‘과학 혁명’이란 훈장을 달았다. 하지만 기술은 그 정체성이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채 끊임없이 우리 삶의 영역에 들어왔고 인간이 가진 욕구의 지평을 넓혔다.

모두들 기술혁신을 부르짖는다. 그 구호에는 과학 혁명이 인류에게 주었던 충격처럼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 세상을 확 바꾸기를 바라는 기대가 잔뜩 담겨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과학은 지향점이 특정되지 않은 럭비공처럼 발전해왔고, 기술은 항상 우리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우리’를 사회나 국가, 혹은 시장으로 치환해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기술의 본질은 성능이 가장 우수하다거나 기능이 독특하다는 점에 있지 않다. ‘필요성에 의해 채택돼 잘 활용되는 것’에 있다.

인류의 요구가 많아질수록 기술을 정교히 엮어내는 능력은 중요해진다. 아울러 이 과정에서 기술 개발자 스스로도 예측하지 못한 혁신적 가치가 보이기도 한다. 참신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물론 매력적이다. 하지만 기술혁신의 관점을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고도로 구조화된 기술개발 집적체계’로 보면 어떨까?

이 같은 기술혁신은 엄청난 끈기가 필요하다. 과학 혁명처럼 화려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겠으나 일단 그 틀을 갖추면 강력하고 지속적인 힘을 발휘하는 견고한 성이 된다. 더군다나 단시간에 베낄 수도 없다.

최근 환경 변화는 우리의 부품소재 개발 과정에 뭔가를 요청하고 있는 듯하다. 다양한 씨를 뿌려 꾸준히 키워나가다 어느 날 문득 간택의 호사를 누리는 ‘묘목론’이 소재 분야에는 일정 부분 유효해 보인다.

부품산업은 그동안 지나치게 빨리 그리고 열심히 성장해 왔고 또 시장에 통했다. 그러나 우리의 그 익숙했던 길목에 이제 중국이 버티고 있다. 결국 우리 부품산업은 고도화, 유연화, 가격 결정력 그리고 지속성을 동시에 갖는 방향으로 선회해야 한다.

문제는 방법이다. 기술적 측면에서 두 가지 전략을 제안한다. 첫째, 개별 부품에 SW 내재화를 더욱 강화해야한다. 둘째, 기술의 구조화를 바탕으로 부품 개발 통합 체계를 보다 지능화해야한다.

특히 시스템 공학 기법 등을 활용한 기술의 구조화는 인접 기술은 물론이고 과거 기술, 그리고 상위 시스템과의 통합화를 용이하게 한다. 연구 결과물 공유가 쉬워지고 재활용성, 확장성이 크게 향상된다.

이미 이 같은 시도를 한 바 있지만 일부 산업 분야를 제외하면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다. 실효성에 의문이 일었고 단기 성과에 급급했던 우리의 체질에 맞지 않은 듯했다. 무엇보다 그게 없어도 시장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절박하다. 투입 자원의 규모로는 미·중·일과 상대할 수 없다. 협업을 위한 구체적 기술적 토대도 보이지 않으며, 뚜렷하게 내세울 무언가도 마땅찮다. 미·중·일 삼각 편대라는 강력한 프레임을 치고 나갈 종합적인 기술혁신 전략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유현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책임연구원 hkyu@et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