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부품칼럼]CES서 ‘창조경제’를 생각해 보다

[소재부품칼럼]CES서 ‘창조경제’를 생각해 보다

최근 열린 CES 2015는 정체기에 접어든 스마트폰 이후 ICT산업의 새 성장동력을 갈구하는 자리였지만,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글로벌 기업 모두 아직까지는 그 해답을 찾지 못한 듯 했다.

각광을 받은 사물인터넷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딜레마에 빠진 듯했다. 기존 기기들은 인터넷 연결기능이 없기 때문에 사물인터넷 서비스를 할 수가 없고, 서비스가 되지 않으니 기기에 인터넷 연결 기능을 추가하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를 돌파할 과감한 투자가 아쉬웠다.

자율주행이 가능한 스마트자동차도 운전자가 전방을 항상 주시해야만 돌발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한계를 드러냈다. 밴드, 시계, 안경, 벨트, 반지, 목걸이 등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웨어러블 기기들이 선보였으나, 심박측정 혹은 운동량 측정 기능이 주요한 응용으로 남아있었다.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 기업인 인텔은 리얼센스(RealSense)라는 동작 인식 기술을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이 기술은 이미 수년 전 벤처기업들이 개발해 상용화한 기술로 ICT 시장을 선도하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인텔은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990년대 후반부터 사업 다각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인텔은 더 이상 CPU 회사가 아닌 네트워크 회사라고 선언하고 변신을 시도했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CPU가 주요 생산품이며 정체되고 있는 CPU 시장과 더불어 반도체 시장 점유율도 잃어가고 있다.

이를 보면 미국과 같이 창의성이 강조되는 나라에서도 인텔과 같은 대기업이 혁신을 통해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인텔과 더불어 PC시대의 승자인 마이크로소프트를 봐도 대기업의 혁신 혹은 창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수 있다. 이 회사의 대표상품인 윈도는 애플컴퓨터를 모방했고, 인터넷 탐색기인 익스플로러도 넷스케이프가 먼저 만든 기술이다. 비록 모방 기술이지만 글로벌 회사로서 시장 지배력을 활용해 경쟁에 승리하고 시장을 장악했다.

반면에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은 작은 벤처기업으로 시작했지만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공룡 기업으로 성장했다.

우리나라 대기업도 지난 몇 년간 새로운 스마트폰을 출시할 때마다 혁신적이라고 선전한 기능들이 소비자 기대에 못 미치더니 결국은 중국 중저가 스마트폰 제조업체의 추격을 허용하게 됐다. 반면에 초미세공정 반도체 제조분야에선 선도 기업을 추격해 드디어 세계 최초로 14나노미터 양산에 들어가면서 세계 1위 기술을 확보하는 것을 보면 ‘혁신’ 혹은 ‘창조’보다는 패스트 팔로어로서 모방 기술이라도 신속히 개발하고 시장지배력을 활용해 경쟁에 승리하는 것이 대기업에는 훨씬 효과적인 것 같다.

정부가 내건 ‘창조경제’를 위해선 대기업에 의존하기보다는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벤처기업 창업이 많아져야 한다.

돌이켜 보면 창조경제는 2000년대 초 김대중 정부의 벤처붐과 일맥상통한다. 당시엔 벤처기업의 가치가 지나치게 부풀려져 모럴 헤저드가 발생하고 주식 투자자들이 손실을 입은 사례가 많았다. 또 충분한 준비 없이 창업했다 실패한 기업인들이 재기하기 어렵게 됐으며, 후배 예비창업자들의 의욕을 저하시켰다.

창업을 위해선 예비창업자들의 기를 살리는 일이 중요하다. 특히 2000년대처럼 한번 실패가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리스크가 없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한 노력들이 현 정부에서 많이 진행되고 소기의 성과도 거두고 있지만 좀 더 강화할 여지가 많다. 창업 실패의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낮은 젊은 대학생들, 대학교나 연구소의 교수 혹은 연구원, 기업에서 퇴직한 연구원들이 낮은 리스크로도 창업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 제공이 필요하다. 대학교나 연구소에는 벤처창업과 연계한 과제를 지원하고, 벤처 창업 시 휴직을 권장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또 퇴직한 연구원이 대학 등에서 초빙 연구원으로 일하며, 벤처 창업을 준비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김대중 정부 당시 설립된 벤처기업 가운데 실패한 기업들도 많지만 시가총액 5위인 네이버도 그때 창업했다. 현 정부에서도 많은 벤처 기업이 탄생하고 이들이 10년 후에는 100대, 30대 혹은 10대 기업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이혁재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시스템반도체 PD hjlee1825@kei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