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훈의 디지털확대경]산업현장은 전쟁터다

[최정훈의 디지털확대경]산업현장은 전쟁터다

M14 대인지뢰는 종이컵 절반 크기다. 지뢰 가운데 파괴력이 가장 작다. 적 병사의 발목 이하 부위만을 겨냥한다. 그래서 발목지뢰다. 적병의 사망이 아닌 부상을 목적으로 개발됐다. 적 부대 기동력을 떨어뜨려 작전수행 차질을 유발하려는 의도다.

파괴력은 철저히 개인에 국한된다. 하지만 부상자가 발생하면 단위부대 전체가 겪게 될 전략상 차질은 매우 크다. 갈 길이 멀고 험한 침투작전 수행 중에 부상병이 생기면 데려갈 수도, 적진에 두고 갈 수도 없다. 부상병을 데려가면 기동력이 떨어진다. 부대가 적에게 쉬 노출될 수 있으니 작전실패 가능성은 높아진다. 적진에 전우를 남겨두자니 나머지 부대원 사기저하는 불 보듯 뻔하다. 작전실패가 예견된다. 발목지뢰가 노리는 바다.

지휘관이 어떤 선택을 하든 전력손실은 불가피하다. 훌륭한 지휘관은 부상자 처리를 놓고 명쾌한 결정을 내리는 지휘관이 아니라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충분히 대비할 줄 아는 지휘관이다.

산업현장도 전쟁터와 다를 바 없다. 산업현장에서 사상자가 발생하면 기업은 상상 이상 인적·물적 피해에 직면하게 된다. 2013년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로 다치거나 목숨을 잃은 사람은 9만1824명이다. 부상 8만2803명, 사망 1929명이다.

한 해 전에 비해 부상자는 0.66% 감소했다. 하지만 사망자는 오히려 3.49% 늘었다. 경기침체에 따른 일자리 감소로 근로자 수가 1년 사이 9만9000여명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체감 부상률과 사망률은 더 높아진다.

수치만으로는 산업재해 심각성을 가늠하기 어렵다. 때문에 각 나라는 근로자 10만명당 재해 비율을 별도 계산한다. 우리나라 부상자 비율은 따지기 부끄러운 수준이니 사망자 비율만 놓고 보자. 우리나라 근로자 10만명당 재해 사망자 비율은 12.50이다. 근로자 10만명 중 12.5명이 한 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영국 0.44, 미국 3.20 등에 비하면 심각한 수준이다.

미국산업안전보건청(OSHA)은 지난 4일 특이한 주장을 내놨다. “산업재해가 소득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내용이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근로자가 산업재해를 당하면 노동력 저하, 치료비·요양비 증가로 저축이 어려워진다. 기술 및 자기계발 등 미래를 위한 투자는 언감생심이다. 결국 중산층 근로자는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중산층 재진입 희망을 접어야 할 처지에 놓인다.

OSHA는 근거로 산업재해를 당한 근로자 소득이 10년 동안 평균 15% 정도 감소한다는 통계를 제시했다. 여기서 회사가 입게 될 손실은 따지지 않았다.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잘 아는 대목이니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었을 게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가진 건 사람뿐이다. 사람이 경쟁력이다. 산업현장에서 재해를 막지 못하면 선진국 도약의 꿈은 공염불이 되고 만다. 기업이 이윤을 내고 영속하기 바란다면 전투력의 근원인 근로자를 사고로부터 지켜내야 한다. 이제 일자리 창출보다 더 중요한 건 안전한 일자리 창출이다. 산업성장 이면의 그림자로 남은 산업재해는 반드시 불을 밝혀 몰아내야 할 대한민국의 어두운 단면이다.

최정훈 정보산업총괄 부국장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