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스토리]<141> 청년사업가 아리랑유랑단 문현우 단장

아리랑은 민족의 희로애락을 표현한 우리나라 민요다. 문현우 아리랑유랑단장은 대학생 때 수많은 대외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일주를 하며 아리랑을 알리는 ‘아리랑 유랑단’을 기획, 기업으로부터 1억원을 후원받았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인재상 대통령상을 받고 한국문화기획패인 코아유(코리아 아유 레디)를 설립해 한국문화를 널리 알리고 있는 중이다.

문현우 아리랑유랑단 단장
문현우 아리랑유랑단 단장

-아리랑 유랑단은 어떤 곳인가.

▲한국문화 기획패 코아유(코리아 아유 레디)라고 부른다. 한국문화 기획, 교육, 공연, 공헌, 디자인 등 여러 사업을 하는 문화벤처다. 교육 사업은 아리랑 스쿨이 있고, 아리랑스쿨에서는 가야금, 해금, 한국화, 한국무용, 서예 등을 배울 수 있다. 문화 공연 파트는 아리랑 유랑단이라는 공연 팀으로 세계 일주를 했고 이후 국내에서 아리랑을 활용해 한국문화를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문화 기획 파트는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실시한 윷놀이 전국 대학생 챔피언십처럼 다양한 한국 전통놀이를 활용해 한국문화를 알린다. 이런 수익을 모아 한국문화를 전공하는 학생에게 장학금으로 지원을 해준다.

-왜 아리랑인가.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해 아리랑이 빼앗길 위기에 처해 있다는 기사를 봤다. 재외동포 시절 향수병에 걸렸을 때 국가대표 경기를 관람할 때 아리랑 응원가를 들으며 향수병을 이겨냈다. 고등학교 시절 집안 사업 실패로 답답한 고시원에서 살 때 붉은악마 활동에서 아리랑을 목 놓아 부르며 답답함을 이겨냈다. 힘든 시절 저에게 힘이 되어준 아리랑이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봤다. 인터넷에 악플을 다는 것이 과연 도움이 될까 생각했고, 직접 아리랑을 알리고 싶었다. 전국 국악 관련 학과에 전화를 해 팀을 꾸리고 기업 문을 두드려 후원을 받아서 아리랑 유랑단을 기획해 세계에 아리랑을 알리게 됐다.

-대학 시절은 어땠나.

▲군 제대 후 2년 동안 30개가 넘는 대외활동을 했다. 그러다 보니 동시에 3~4개의 활동을 한 적도 있다.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고 대외활동에서도 우수 활동자로 뽑혔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외활동은 무엇을 하나 꼭 집을 수 없다. 모두 장단점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해외 프로그램이 가장 좋았다. 사람들과 끈끈한 유대감도 얻을 수 있고 무엇보다 해외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해외탐방 대외활동은 14개가 넘는다.

대외활동을 많이 했지만 저도 처음에 시작할 때는 14번 정도 떨어졌다. 하지만 낙담을 하기보다는 저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다. 주변 친구에게 저에 대한 인생 설문조사를 하고 제가 어울리는 과일·동물·곤충·만화캐릭터를 생각하는 등 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때 당시 고민을 거듭해서 나온 게 스펀지였고 저를 ‘스펀지 문’이라고 브랜딩했다. 스펀지처럼 세상만사 모든 것을 빨아들여 엑기스만 돌려준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자신을 브랜딩 하다보니까 성과가 나기 시작했고 대외활동 체리피커가 될 수 있었다.

-굵직한 대외활동을 했는데 비법이 있는가.

▲첫 번째는 발품정신이다. 합격에 대한 열정을 직접 보여줄 수 있어야 된다. 대부분 사람들이 키보드 위 열정을 보여주려고만 한다. 저는 카페베네 청년봉사단에 지원할 때 열정을 보여주기 위해 티셔츠 하나를 가지고 카페베네 20군데를 돌아다니며 직원들에게 응원메시지를 적어달라고 했다. 응원메시지가 빽빽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면접장에 들어갔더니 면접관 시선이 집중됐다. 20곳 지점을 돌아다니다 보니 카페베네 지점별 문제점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직접 돌아다니면서 느낀 점을 면접 때 전달하니 면접관이 좋게 봐줬다.

두 번째는 정보에 대한 더듬이다. 정보에 대한 갈증이 심해야 된다. 많은 청년이 갈증은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대학생 때 제가 집에 들어오면 스펙업 전체보기를 해서 하루 올라왔던 정보를 일일이 체크하고 학교 공지사항도 매일매일 체크했다. 또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전단지나 현수막을 유의 깊게 보고, 제게 맞다 싶으면 바로 카메라로 찍어서 기억했다. 정말 하고 싶으면 몰래 포스터를 떼어오기도 했다.

-좋은 곳에 취직할 수 있었을 텐데 사업을 계획한 이유는.

▲아리랑 유랑단으로 세계일주를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원래는 스튜어드가 꿈이었다. 그래서 해외를 나갈 수 있는 대외활동과 관련된 활동을 많이 했다. 아리랑 유랑단으로 세계일주를 하는 동안에도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 굉장히 많았다. 고민 끝에 한국문화를 알리면서 세계를 누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동 기간 동안 외국인과 재외동포가 저희에게 보내준 뜨거운 사랑에 이런 프로그램이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으로 이뤄지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했다.

-사업을 운영하면서 어떤 점이 어렵고 보람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이제야 한국문화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장이 마련돼서 감사하다고 말해 줄 때 보람을 느낀다.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곳은 많지만, 대부분 나이대가 높은 분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것이고,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곳은 별로 없다. 젊은 층에게 한국문화를 알려주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향후 개인적, 사업적 목표는 무엇인가.

▲아리랑스쿨은 지금은 2개 점포지만 단기적으로 10개, 나중에는 국내외 점포 100개, 수강생도 지금은 200명이지만 나중에 1000명 이상으로 점점 규모를 키워나갔으면 좋겠다.

코아유 소셜 미션은 한국문화를 전공하는 사람들이 설 자리를 주자는 것이다. 현재 24곳에 대학교에서 900명의 한국 문화 전공자가 배출되지만 설자리가 없다. 이들이 자생력을 가져 스스로 설 수 있게끔 판을 만들어 많은 청춘이 한국문화를 기획하고 즐기는 것을 문화로 여기는 붐을 만들고 싶다. 한국문화를 통해 세대 간 간극을 극복할 수 있길 바란다.

-청년을 위해 한마디 해준다면.

▲김치는 썩는다고 표현하지 않고 익는다, 발효된다고 말한다. 고민이 많거나 포기하고 싶을 때 자신이 잉여라고 생각하지 말고 ‘나는 이 순간에도 발효되고 익어가고 있다’라고 생각한다면 언젠가는 맛깔나는 김치가 될 수 있다.

etnews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