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의 날`을 만듭시다. 제2의 도약이 필요해요.”
2008년 어느 날.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사무실에 산업계, 학계, 연구계, 정부 관계자가 모여 한 목소리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시름하던 바로 그 때였다. 당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바닥을 모르고 폭락했다. 버티고 버텼던 독일 키몬다는 결국 파산을 선언했다. 1등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도 그해 4분기 수천억원대 적자를 기록했으니 불황의 골이 얼마나 깊었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반도체의 날은 이 같은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제2의 도약을 선포하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 날짜는 10월 29일. 이 날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한국 반도체 수출액이 100억달러를 돌파했던 때가 1994년 10월 29일이었다. 삼성 도쿄 선언(2월 8일), 256M 반도체 공동 개발(8월 29일), 삼성반도체 설립일(12월 6일) 등도 후보에 올랐으나 모두가 수긍한 날짜는 10월 29일이었다. 후발주자로 시작했지만, 세계 굴지의 반도체 기업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날에 의미를 둔 것이다.
반도체는 한국 수출 경제를 이끌어온 대표 품목이다.
1990년 45억4100만달러 수출액을 기록해 처음으로 수출 비중 1위 자리에 올랐다. 지난해에도 1위 자리를 지켰다. 작년 반도체 수출액은 629억3900만달러였다. 일반기계(468억7300만달러), 자동차(458억1400만달러), 선박류(400억400만달러), 석유화학(379억1800만달러), 무선통신기기(325억3200만달러)보다 반도체 수출액이 많다.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핵심 산업은 바로 반도체라는 것에 누구도 이견이 없다.
수출만 있는 것은 아니다. D램 분야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시장 점유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세계 시장을 주도한다.
과거 D램 시장의 경쟁 구도는 `혼전` 양상이었다. 미국 인텔을 포함해 일본 NEC와 도시바, 독일 인피니언(키몬다를 분리, 이후 키몬다는 파산) 등 기라성 같은 업체가 D램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러나 한국 업체에 밀려 지금은 모두 관련 시장에서 철수했다. 1994년 세계 D램 업체 수는 25개였지만, 10년 뒤인 2002년에는 12개, 또 다시 10년 뒤인 2012년에는 3개로 줄어들었다. 30년에 걸친 D램 대전에서 생존한 업체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밖에 없다. 국내 업체와 마이크론과의 기술 격차는 2년 이상 벌어져 있다는 것이 전문가 설명이다. D램 가격이 크게 떨어져도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이익을 내지만, 마이크론은 적자를 내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삼성전자 성장은 그야말로 눈부시다. 삼성이 D램 사업을 시작한 1983년 세계 시장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1985년 삼성전자 반도체 매출액은 9500만달러로 세계 시장 42위를 기록했다. 당시 세계 1위였던 일본 NEC 매출액은 19억8000만달러였다. 20배 차이가 났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D램 시장 선두에 올라선 1992년 삼성전자 매출은 19억달러까지 확대된다. 또 다시 10년 뒤인 2002년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 시장까지 섭렵하며 인텔에 이어 세계 반도체 2위로 올라서게 된다. 이 때 삼성 반도체 매출은 86억3000만달러였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뿐 아니라 모바일 시스템온칩(SoC), 전력관리칩(PMIC), 디스플레이구동드라이버IC(DDIC), CMOS이미지센서(CIS) 등 시스템반도체 사업을 확대하고 위탁생산(파운드리) 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하며 매출액을 계속 늘려가는 중이다.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매출은 388억5500달러였다. SK하이닉스도 SK그룹 편입 이후 경쟁력을 확대해 지난해 164억9400만달러 매출로 반도체 업계 3위 자리에 올랐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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