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의 특명’…SK하이닉스, 협력사 파격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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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소재 기술혁신기업 3곳 선정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유망한 반도체 장비·재료 회사를 발굴해 파격 지원하라. 이들에게 경쟁력이 있으면 곧 우리 힘이 강해진다.”

최태원 SK 회장은 지난해 말 박성욱 부회장, 임종필 구매본부장 등 SK하이닉스 경영진에 특명을 내렸다. 국산 반도체 장비와 재료업체를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하라는 주문이었다. 외산 의존 기술을 국산화할 능력이 있는 기업, 세계에서 처음으로 혁신 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는 기업 등 대상도 구체화해서 제시했다. 규모의 경쟁력을 갖춰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회사는 배제했다. 최 회장은 선정 업체에 파격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강조했다.

파격 지원은 '최소 구매물량 보장' 정책으로 다듬어졌다. 기술 개발에 성공하면 SK하이닉스가 양산 라인에 도입하겠다는 약속이다. SK하이닉스 생산 라인에서 장비나 재료가 우선 평가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기술 개발 자금도 제공한다.

SK하이닉스는 곧바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후보 업체 물색에 나섰다. 15여개 업체가 SK하이닉스 첫 '기술혁신기업' 물망에 올랐다. 여러 차례 심사 끝에 최종 3개 업체를 뽑았다. 반도체 식각 장비 업체 APTC, 웨이퍼 광학 측정검사 장비 업체 오로스테크놀로지, 잉크 형태 전자파 차폐재를 개발하고 있는 엔트리움을 선정했다.

식각은 노광으로 새겨진 회로 패턴이나 증착 공정으로 얹어진 박막을 화학·물리 반응을 이용해 깎아 내는 공정이다. 최근 선폭 미세화의 한계로 회로 패턴을 새기는 노광 공정 횟수가 늘면서 식각 공정의 중요성도 높아졌다. 반도체 식각 장비는 미국 램리서치가 독식하고 있다. APTC는 자체 기술로 식각 장비를 개발했다.

오로스테크놀로지 광학 오버레이 측정 장비는 전기신호를 전달하기 위해 여러 층으로 쌓는 물질 패턴이 제대로 정렬됐는지 측정하는 역할을 한다. 증착 층을 하나씩 쌓을 때마다 오버레이를 통해 오차를 파악, 노광기의 위치를 보정한다. 장비는 미국 KLA-덴코가 독점 지위에 있지만 오로스테크놀로지가 최초로 국산화에 성공했다.


엔트리움이 개발하고 있는 잉크 형태의 전자파차단(EMI) 차폐재는 개발에 성공한다면 '세계 최초'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EMI 차폐 기술은 전자파 간섭에 따른 반도체 칩의 예상치 못한 이상 작동을 방지한다. 애플 아이폰에 탑재되는 주요 반도체에 EMI 차폐 공정이 적용된다. 기존에는 스퍼터 장비로 EMI 차폐 공정을 수행했다. 스퍼터링은 재료에 물리력을 가해 대상 표면에 박막을 고르게 증착시키는 장비다. 잉크 형태의 재료가 상용화되면 스퍼터가 아닌 스프레이 방식의 증착 공정으로 EMI 차폐 공정을 수행할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이 공정을 완성하면 공급 원가를 더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회사는 세계 수준의 미세 공정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양산에 필요한 핵심 장비와 재료는 미국, 유럽, 일본 등 해외 기업 의존도가 매우 높다”면서 “장비와 재료의 국산화율을 높여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협력사의 경쟁력도 강화시키는 등 실질적인 시너지가 창출될 수 있도록 이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유망한 중소기업을 발굴하고 지원·육성하는 것은 국내 반도체 업의 생태계를 탄탄히 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면서 “기술혁신기업 프로그램이 좋은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매년 기술혁신기업을 선정할 계획이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