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센서 정보를 이용해 사람의 심리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기술을 '감정인식(emotion reading)'이라고 한다. 음성인식 기술에 이 기술을 더할 경우 인간과 기계, 기계와 기계 간의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해진다. 사람의 감정 상태를 기계가 진단해보고 기초 진료 자료를 내놓을 수도 있다. 경찰 등 수사기관에서도 활용이 가능하다. 실제로 최근 상상을 넘어서는 수준의 놀라운 감정인식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본사를 두고 있는 벤처기업 '엔테크랩(NTechLab)'은 뛰어난 안면인식 센서를 활용해 사람의 감정 상태를 상세히 읽어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리고 이 기술을 모스크바시 경찰 당국에 공급할 계획이다.
◇구글 안면인식 기술보다 뛰어나
현재 모스크바 시 경찰은 엔테크랩과 이 기술을 수사현장에 어떻게 도입할지 효과적인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도입이 완료될 경우 감성인식 기술을 수사 현장에 활용하는 세계 최초 사례가 된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수백만명이 모여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특정 인상착의가 있는 사람을 찾아낼 수 있다. 또 찾아낸 사람의 성과 나이 등을 모니터한 뒤 그 사람이 화가 났는지,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혹은 불안해하는지 등을 판별할 수 있다.
엔테크랩의 공동창업자인 알렉산드르 카바코프(Alexander Kabakov)는 “번화가에서 수초 만에 테러리스트나 범죄자, 살인자 등을 찾아낼 수 있는 기술”이라며 “경찰 등 수사기관에서 이 기술을 도입할 경우 새로운 차원의 수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 기술이 러시아 경찰 어느 부서에 어떻게 활용될 것인지에 대해 밝히지 않았다. 카바코프는 “현재 CCTV 카메라에 접속하는 방안 등을 협의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결정된 내용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 기술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15년 미국 워싱턴 대학에서 열린 얼굴 인식 경연대회에서다. 이 대회에서 엔테크랩의 안면인식 기술은 100만장의 사진 속에 들어 있는 특정인 사진을 73.3%까지 식별해냈다. 이는 대회에 함께 참여한 구글의 안면인식 알고리즘을 훨씬 앞서는 기록이었다. 여기서 용기를 얻은 카바코프는 아르템 쿠크하렌코(Artem Kukharenko)와 함께 SNS 상에서 연결된 사람이라면 누구든 추적할 수 있도록 만든 앱 '파인드페이스(FindFace)'을 만들었다.
◇먼 거리에서도 사람 감정 상태 94% 식별
이번에 모스크바 경찰에 도입될 기술은 엔테크랩이 보유한 안면인식 기술에 최근 새롭게 개발되고 있는 감성인식 기술을 보완한 것이다. 즉 생체인식 기술, 센서 기술, 디스플레이 기술 등을 활용해 사람의 감정 상태를 파악하는 기술을 말한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사람의 감정을 파악하기 위해 병원의 심전도 검사와 같은 방법을 사용해 왔다. MIT 등 주요 기관들은 심장 박동이나 혈압, 숨소리 등을 측정해 그 사람의 감정 상태를 파악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최근 개발되고 있는 감성인식 기술 대다수는 근거리에서만 측정이 가능했다.
엔테크랩 기술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장거리에서 감정 파악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카바코프 CEO에 따르면 북적거리는 군중 속에 있는 사람의 독특한 감정 상태를 94%까지 식별해낼 수 있다. 엔테크랩에서 자사 기술의 알고리즘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장거리에서 특정 인물을 찾아내 영상만으로 그 사람의 감정 상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이 산업계로부터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예고 없는 원거리 사용에 사생활 침해 논란도
모스크바 경찰이 엔테크랩 기술을 CCTV에 연결할 경우 모스크바 시에 설치돼 있는 약 15만개의 CCTV 카메라를 통해 시민 표정까지 감시할 수 있게 된다. 이 기술이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이 있는 만큼 범죄와 테러로부터의 안전을 내세워 사용이 확대된다면 사생활 침해라는 윤리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실제로 '브콘탁테(VKontakte)'의 한 유저 그룹이 포르노 영화에 출연한 여성들을 발견하고 그 영상의 친구나 친척을 협박한 사실이 있다. 브콘탁테는 러시아에서 하루 평균 유저가 7000만명에 달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는 앱인데 사람들이 이를 통해 오랫동안 못 만난 친구, 혹은 행방불명된 가족 등을 찾는다.
그러나 엔테크랩 측은 이런 우려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카바코프 CEO는 “이미 도로 곳곳에 수많은 CCTV가 설치돼 사생활 침해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안면인식 기술에 대해 논란을 불러일으킬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수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며 사생활을 침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사생활 침해는 세계인들 가운데 일상적 삶이 됐다며 안면인식 기술에 책임을 묻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것이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의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엔테크랩에 따르면 지금까지 1500만달러가 투자됐는데 또 다른 투자사들로부터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안면인식 시스템의 구매자도 급증하고 있다. 현재 미국, 중국, 인도, 영국, 호주 등에서 2000여 구매자(개인 혹은 기업)에게 소프트웨어가 판매됐는데 구매처가 다른 나라로 확산되고 있다. 관계자들은 엔테크랩의 기술이 보안 시장에서 계속 주목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글 : 이강봉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