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비, 국내 제조사에 묶음형 새 라이선스 계약 요구...업체 '필요없는 것까지 끼워팔기' 불만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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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음향기기 기업 돌비가 국내 디지털기기 제조사에 해당 기업이 활용하지 않는 특허를 다수 포함시킨 표준필수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요구하고 나섰다. 업계는 국제음향기술표준을 다량 보유한 돌비가 영향력을 활용해 '끼워 팔기'식 계약을 제안한 것으로 풀이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돌비는 올해 상반기에 국내 셋톱박스 A업체 상대로 새 음성코덱 표준필수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요구했다. 돌비는 계약서에서 '고급오디오부호화'(AAC) 코덱을 제외한 돌비 음성코덱 관련 특허를 모두 포함시켜서 라이선스를 구성했다. 돌비는 표준필수특허를 다수 보유했기 때문에 시장 영향력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돌비가 최근 국내 업체에 새 음성코덱 라이선스를 포함한 계약서를 요구했다”면서 “(돌비 외 다른 기업도 참여하는)AAC 코덱을 제외한 돌비의 모든 음성코덱 관련 특허를 계약서상에 포함시켰다”고 설명했다.

A업체는 현재 돌비에 연간 100만달러(약 10억원) 수준 특허 로열티를 납부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만료되는 특허에 대해선 비용을 아낄 수 있는 게 일반상식이다. 그러나 새 라이선스 계약을 맺으면 앞으로도 해마다 100만달러 수준의 로열티를 내야 한다. 로열티를 초과 지출하는 셈이다.

A업체 관계자는 “앞으로 몇 년 안에 만료될 특허를 생각하면 특허 로열티 비용을 줄일 수 있는데 돌비 라이선스 계약대로라면 기존 비용 그대로 납부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돌비가 새로 제시한 라이선스 계약은 우리 업체에서 활용하지 않는 중국, 베트남 등 지역 특허도 포함하고 있다”면서 “업체 입장에서는 로열티 납부 범위가 너무 넓다”고 덧붙였다.

끼워 팔기식 계약은 지속 반복돼 온 문제다. 국제 특허풀이나 표준필수특허가 있는 기업은 국내 업체와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하면서 업체가 쓰지 않는 특허를 끼워 팔거나 만료된 특허를 포함시키는 등 '얌체'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 돌비는 '계약서 요구 사실'과 관련, 공식 답변을 하지 않았다.

전문가는 이와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체계를 갖춘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개별 기업이 거대 글로벌 특허권이 있는 기업 대상으로 협상 우위를 확보하려면 업계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특허 라이선스 계약서는 통상 영문으로 몇 십 쪽이나 되기 때문에 다 분석하려면 몇 달이 소요된다”면서 “계약서 내용을 꼼꼼히 살피려면 전문 인력이 필요하지만 중소기업 대다수가 이를 갖추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올해 초 앰펙(MPEG)LA, HEVC 어드밴스드, 벨로스미디어 등 3개 해외 특허풀이 국내 영상기기 업체에 H.265 로열티 납부 경고장을 발송한 문제도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업계와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가 로열티 납부 문제 논의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KEA 관계자는 “3개 특허풀 간 중복 특허를 회피하기 위한 협상력을 갖춰야 하지만 대책 마련 고민만 하고 있다”고 답답해 했다.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 이영호기자 youngtig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