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과학향기]아시아인의 유전체를 대규모로 분석하다

우리나라 연구팀이 주도해 아시아 64개국 219민족의 유전체를 분석한 연구결과가 네이처 커버스토리에 실렸다. 이번 유전체 데이터는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유전체 데이터 중에서 가장 많은 아시아의 지역과 민족을 포괄한다.

[KISTI과학향기]아시아인의 유전체를 대규모로 분석하다

◇생명의 비밀을 밝히다

분당 서울대학교 병원과 생명공학기업 마크로젠으로 대표되는 공동 연구팀은 '게놈 아시아 100K 이니셔티브'라는 국제 컨소시엄을 구성해 기존의 유럽인을 위주로 한 유전체 데이터 분석에서 벗어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팀은 한국 152명, 말레이시아 156명, 인도 598명, 파키스탄 113명, 몽골 100명, 중국 70명, 파푸아뉴기니 70명, 인도네시아 68명, 필리핀 52명, 일본 35명, 러시아 32명를 비롯해 총 1,739명에 대한 전장 유전체를 분석했다.

아시아인 대규모 유전체 연구가 실린 네이처지 표지. (출처: nature)
아시아인 대규모 유전체 연구가 실린 네이처지 표지. (출처: nature)

유전체란 생명체의 핵 속에 들어있는 유전자 전체를 말한다. 유전체학은 이 유전자 전체를 분석해 지도로 만들어 각각의 유전자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 밝히고자 한다. 유전체 분석은 유전성 난치질환의 원인을 규명하고 이를 치료하는 데 핵심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생명윤리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에서는 유전체학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최초로 유전체를 모두 해독한 생명체는 바로 바이러스의 한 종류인 박테리오파지다. 영국의 생화학자인 프레더릭 생어는 1977년 DNA 중합 효소가 DNA를 복제할 때 OH기(수산기)가 없는 특정 핵산이 끼어들면 중합이 끝나는 점을 이용해 염기서열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DNA 5386개로 이뤄진 바이러스인 '박테리오파지φX(파이엑스)174'의 게놈을 완전히 분석해냈다. 그 이후 개인의 유전체를 해독하는 데까지 이르렀고 바로 이것이 그 유명한 '인간게놈프로젝트'이다.

◇아시아인을 위한 맞춤형 의료의 시작

인간게놈프로젝트로 알게 된 개인의 완전한 유전체는 개인별 맞춤의료에 활용됐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13년 미국 영화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받은 유방 절제술이다. 해독한 인간 표준 유전체와 졸리의 DNA 염기서열을 비교한 결과, 졸리의 '브라카(BRCA)1' 유전자에 변이가 있음이 발견돼 유방암 예방 조치로 절제술을 받은 것이다.

'게놈 아시아 100K 이니셔티브' 역시 아시아인에게 맞춤한 질병 치료를 위해 시작됐다. 아시아인은 전 세계 인구 77억 명 중 58%에 해당하는 45억 명에 달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시아인에 대한 게놈 데이터 연구가 많지 않았고 공개된 데이터 또한 부족해 아시아인 대상의 맞춤형 진단과 치료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에 가천의대 암당뇨연구소의 김성진 박사팀과 국가생물자원정보관리센터의 박종화 박사팀이 공동으로 최초의 한국인 게놈을 분석한 사실이 있다.

게놈아시아 100K프로젝트의 국가별 샘플수 및 분포도. (출처: 마크로젠)
게놈아시아 100K프로젝트의 국가별 샘플수 및 분포도. (출처: 마크로젠)

게놈아시아 100K 컨소시엄은 이번 연구를 통해 아시아 인종의 기원적 특성을 분석하고 유전체 데이터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아시아에 거주하는 약 142개의 민족에게는 이전 연구들에서 밝혀진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유전적 특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히며, 이를 기반으로 아시아 민족별 주요 약물에 대한 반응이 다름을 규명해냈다.

예를 들어, 심혈관 질환 환자에게 주로 처방되는 항응고제 '와파린(Warfarin)'은 어떤 환자에게는 잘 반응해 치료에 효과적이지만, 특정 유전 변이를 가진 환자에게는 알레르기 등 약물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연구진은 와파린의 경우,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또는 몽골인과 같은 북아시아 조상을 가진 사람들이 예민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아시아인은 물론, 아시아인의 유전적 특성을 이어받은 전 세계 모든 인종을 대상으로 맞춤형 진단과 치료가 가능해지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이번 컨소시엄의 공동 연구책임자이자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석좌교수인 서정선 교수(Prof Jeong-Sun Seo)는 “아시아인에 대한 유전체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아시아인이 특정 질병에 걸릴 위험이 더 높은지, 특정 약물에 더 잘 반응하는지 분석해낼 수 있다”며 “앞으로 10만 명 아시아인 유전체 빅데이터를 성공적으로 완성해, 국내외 아시아인 관련 질병 및 약물 유전체 연구를 활성화하고 아시아인 맞춤 정밀의학 실현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데 앞장설 계획이다”고 말했다.

글: 홍종래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