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수출규제 1년…소부장 2.0 시대로<상>] 韓 소부장 자립 가속…민·관 협력에 낭보 잇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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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품목 재고량 2~3배 확대
해외 소부장 기업 M&A 13건 추진
불화수소 등 韓 기술 경쟁력 재조명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순기능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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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7월 일본 정부는 우리나라를 상대로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불화폴리이미드에 수출 규제를 단행했다. 우리나라 대법원의 강제 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를 통제하면서 압박을 가했다. 이른바 '한국 때리기'로 자국 내 정치 갈등을 해결하는 한편 우리가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에 타격을 가하기 위한 전략이다. 하지만 우리 산업계는 지난 1년 간 차질 없는 생산을 이어갔다. 기업들은 재고 확보에 힘을 쏟는 것은 물론 공급망 다변화, 대체 소재 마련 등에 나섰다. 정부는 수출규제 품목 공급 안정화를 위해 범정부 차원으로 국내생산 확대와 수입국 다변화를 지원했다. 민·관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자립화'를 위한 굳건한 협력체계를 구축, 산업 기반 붕괴 위기를 극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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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관 합심으로 대응”…소부장 2.0 전략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제2차 포스트 코로나 산업전략 대화'를 개최하고 지난 1년간 추진된 우리 정부와 기업들의 기술 자립화 노력을 되돌아보는 자리를 가졌다.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해 미국, 중국, 유럽 제품을 대체 투입하는 한편 물론 국내외 기업의 투자유치, 생산 확대 등으로 공급 안정화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당초 수급 상황이 불확실했던 100대 핵심 품목에서는 기존 대비 2~3배 많은 재고를 확보했다. 필름 소재 등 76개 품목은 미국, 유럽 등 대체 수입 채널을 확보했다. 48개 품목은 인수합병(M&A) 13건, 총 7340억원 규모 투자 프로젝트로 생산 역량을 끌어올렸다.

성윤모 상업부 장관은 “정부와 기업이 다각적 방안을 총동원해 수출규제 3대 품목의 실질적 공급 안정화를 달성했다”면서 “민·관이 합심한 일본 수출규제 대응은 기업인들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라고 강조했다.

산업부는 이날 작년 8월 소부장 경쟁력 강화 대책으로 지정한 100대 핵심 품목을 338개로 세 배 이상 늘린다고 밝혔다. 기업 공급망 다변화를 지원하는 한편 국가 간 협력체널을 강화해 수급 체계 체질을 완전히 바꾸겠다는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핵심 품목의 해외 의존도를 낮춰 일본 수출규제와 같은 사태를 반복하지 않은 것은 물론 포스트코로나 시대 공급망 재편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다. 한국 소부장 산업의 경쟁력을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소부장 2.0' 전략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국회에서 소부장 산업 현안점검회의를 열고 소부장 2.0 전략 마련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각 부처에 △특정 국가 의존도 완화를 위한 기술 자립(산업부) △R&D 고도화(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인력 양성, 중소기업 피해 최소화(중기벤처부) 등을 주문했다.

성 장관은 “그동안 소부장 특별법 전면 개정, 경쟁력 위원회 출범 등 강력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면서 “소부장 2.0 전략을 마련해 국회와 소통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韓 기업 '국산화' 성과 이어져

일본 수출규제 이후 우리 기업들은 대체재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공급망 다변화를 타진하기 시작했다. 수입국과 우리나라 관계에 따라 불시에 공급망이 끊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내 생산거점을 확대하는 한편 독자 기술을 기반으로 핵심 품목 국산화를 추진하는 기업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니혼게이자이는 이 같은 한국 산업계 상황을 보도하면서 “일본의 수출규제는 수율 저하를 막기 위해 다소 비싸더라도 고품질 소재를 사용한 (한국 기업들의) 관습을 흔들었다”면서 “한국 기업이 수출규제 강화 이후 일본 소재 기업을 거래 우선 순위에 두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SK머티리얼즈는 이달 순도 99.999% 불화수소 가스를 양산한다고 밝혔다. 불화수소는 일본 정부가 지정한 3대 수출규제 품목 중 하나다. 반도체 공정 미세회로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지만 그동안 일본 소재 업체가 시장을 주도해 해외 의존도 100%를 벗어나지 못했다. SK머티리얼즈가 이번에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하게 됐다.

중견·중소기업들도 핵심 소부장 국산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그동안 주요 국가 기업에 밀려 고객사 확보에 난항을 겪었지만, 일본 수출규제를 계기로 대체제로 조명을 받고 있다.

화합물 반도체용 패키지 전문업체 A사는 과거 일본에서 100% 수입했던 패키지를 국내 최초로 국산화했다. 반도체에서 발생한 열을 방출하기 위한 히트 싱크 소재 원천기술을 확보, 원가 경쟁력을 확보했다. 완제품은 물론 핵심 소재 기술까지 확보해 국내 소재 산업 경쟁력을 강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전자소재 전문업체 B사는 디스플레이용 실버나노와이어(AgNW)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실버나노와이어(AgNW)는 대일 기술의존도가 높은 디스플레이용 전자소재 산화인듐전극(ITO)을 대체할 수 있는 차세대 기술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작년 일본 수출규제를 계기로 기술 경쟁력을 갖춘 국내 기업들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면서 “코로나19 등으로 글로벌밸류체인(GVC)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어 국내 소부장 산업에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사례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