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37>굴절적응방식

실상 진화론엔 우리 상식 넘어선 얘기도 있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어떤 기능이 진화 과정 중에 다른 기능을 채택할 수 있다고 봤다. 비근한 예가 깃털이다. 원래 기능은 보온이나 짝에게 매력을 뽐내는 용도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비행의 열쇠가 됐다. 복잡한 물고기 턱뼈는 육지 생물의 청력기관이 됐음직 하다.

누군가는 이것을 능동형과 수동형 과정의 결합이라고 한다. 자연선택이 만든 특정 기능을 다른 새 용도에도 쓰거나 비적응된 기능은 다른 기능으로 변용된다. 생물학자 스튜어트 카우프만(Stuart Kauffman)은 여기에 '근사탐색'이란 멋진 용어를 붙이기도 했다.

혁신은 꽤나 진화과정을 닮았다. 그런 탓일까. 혁신 방식도 수없이 다양하다. 도서관을 만든다면 꽤나 많은 서가를 사례란 장서들로 채울 수 있지 싶다. 아마도 생존을 위한 비즈니스 진화학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겠다.

기왕 진화론을 떠올린다면 혁신에도 닮은꼴이 있다. 개중 하나는 '굴절적응'이다. 실상 이것은 근사기능 탐색이다. 한편은 능동적 탐색이었고, 다른 한편은 수동적 모색이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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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가 있을까. 잠시 진화 산물인 우리 자신 얘기를 해보자.

밴 필립스(Van Phillips)는 21살 때 사고로 다리를 잃는다. 기존 의족엔 만족할 수 없었다. 노스웨스턴대 의대에 진학한 후 직접 의족 디자인을 해보기로 한다. 곧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의족 설계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그가 내린 결론은 생각의 함정이었다. 디자이너들은 미학이란 함정에 빠져 있었다. 보형물을 실제 다리처럼 보이게 하는 게 모든 것에 앞선 대전제가 되어 있었다.

“왜 그것이 꼭 다리처럼 보여야 할까. 다리처럼 기능하면 되지 않나.” 결과물은 플렉스 풋(Flex-Foot)이었다. 전혀 우리 다리 모습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기능한다. 스프링처럼 보이는 이것은 치타 뒷다리처럼 작동한다. 필립스는 미학 대신 진화가 찾아낸 기능을 떠올렸고 상식을 털어낼 수 있었다.

누군가는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와 아마존을 이 범주에 넣기도 한다. 어느 누구도 아마존을 하이테크 기업 전형으로 보지 않는다. 심지어 베이조스 자신도 고백한다. “킨들을 만들 때 하드웨어를 만들어 본 경험도 없었고 핵심 역량도 없었다.” 하지만 고객이 뭘 원하고 있는지 알았고, 킨들은 고객이 상상하던 기능에서 창조된 진화물이 됐다.

반면에 아마존웹서비스(AWS)는 다른 진화 산물이다. 아마존은 분산컴퓨팅에 웬만한 역량을 갖고 있었다. 문제가 한 가지 있었다. 베이조스 표현을 빌자면 기능을 어디 쓸지 찾아야 했다. 결과물은 새 고객의 필요였고, 결론은 우리 모두 아는 것과 같다.

생물학 세계를 보면 선택과 상상력이 주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생명은 원래 기능에 쓸모 있는 다른 기능을 찾아내든 퇴화 과정에 내다버리는 대신 다른 기능을 발견해 내면서 진화했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아마존은 그들답게 이것을 '고객수요 후향'와 '역량 전향'이란 멋진 원칙으로 진화시키기조차 했다. 거기다 이런 가능성은 가까운 곳에서 착안해 낼 수 있다. 카우프만이 굳이 이것에 '근사탐색'이란 용어를 붙였는지 소름 돋을 지경이다.

결국 혁신의 이 오만가지 모습에는 '굴절적응'이란 방식이 숨겨져 있던 셈이다.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37>굴절적응방식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