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비판 인문학 100년사 - 인간 해방의 역사 한눈에 보기

비판 인문학 100년사 표지
비판 인문학 100년사 표지

학문과 직업이 세분화·전문화함에 따라 현대인의 지식의 폭도 좁아졌다. 이른바 ‘먹고사니즘’에 갇혀 다른 세상에 눈 돌릴 엄두를 못 낸 탓도 있다. 때문에 현대인들은 보다 본질적인 탐구, 그리고 풍부한 사유에 목말라있다. ‘인문학 열풍’은 이런 맥락에서 등장했다. 대학 강단에서 인문학 강좌를 대거 선보이고, 방송국은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해 인문학 관련 프로그램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방대한 인문학 지식을 1~2시간의 프로그램에 담기엔 한계가 있기에, 인문학은 유명작가들의 문학작품이나 철학가의 사상으로 축소되곤 한다.
 
사실 인문학이 품은 큰 가치는 바로 ‘인문주의’다. 인문주의는 인간 고유의 가치를 담은 예술 종교 철학 과학 윤리학 등을 존중하며, 인간을 짓밟는 모든 압력을 떨쳐내려는 노력을 일컫는다. 『비판 인문학 100년사』는 그동안 가려졌던 인문주의의 가치를 소개하기 위해, 인문주의 지난 100년의 역사를 10년 단위로 나누어 전했다.
 
신을 죽이고 선 인간
 
인간사회가 종교와 전통에 매몰되었던 역사는 유구하다. 인간의 삶과 모든 행위가 신에 대한 감사, 나아가 복종으로 귀결됐다. 그러나 인간사회가 종교와 전통에 매몰되고, 신의 이름으로 수많은 억압이 자행되는 등 부작용이 따랐다. 이에 인간은 ‘신이 지배하는 시대’를 ‘암흑의 시대’로 규정하고 극복하고자 했다. 신을 죽이고 해방된 인간으로서 존재하려는, 인문주의의 태동이었다. 부패한 기독교가 천국을 미끼로 대중을 착취할 때 인문주의자들은 과감히 종교 전통에 반발했다. 대신 인간의 본성과 인류애적 사랑을 찾고자 했다.
 
20세기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니체의 죽음, 그리고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발표와 함께 시작됐다. 저자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신의 죽음’과 ‘인간 해방’이 본격화했다고 평가한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에 대한 관심은 인간 내면에 대한 심도 깊은 탐구로 이어졌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무의식에 주목했다. 저서 『꿈의 해석』을 통해 꿈과 최면을 통한 그의 연구를 소개했다. 그는 인간을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로 규정하고 은밀한 욕망까지도 긍정한다. 아들러는 열등감, 융은 집단 무의식에 초점을 맞추어 인간을 이해했다.
 
인간 개인 뿐 아니라 인간의 관계, 즉 사회에 대한 연구도 이어졌다. 당시 유럽에선 노동 분업과 상품시장, 관료주의의 발달 등으로 사회 전반이 격변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대중과 군중의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사회,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회의 본질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사회학이 등장했다.
 
새로운 억압, 새로운 인문주의
 
20세기는 ‘인간으로의 회귀’를 선언하며 그 문을 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에 대한 회의’가 서구사회를 휩쓸었다. 세계대전의 발발과 파시즘의 팽창은 인간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그렇기에 특별한 존재라는 인식을 위협했다.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전쟁의 원인을 서로에게 돌리고. 전쟁의 상처가 세계 곳곳에 여전한 지금도 새로운 억압이 등장하고 있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와 커뮤니케이션의 결합은 세상을 불안정하고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개인은 더 이상 국가나 특정 집단의 보호망에 머무를 수 없다. 대신 무한정의 주체들이 상호작용하는 넓은 세상에 내던져지고 말았다. 이른바 ‘무질서’의 억압이다.
 
21세기 들어서는 20세기가 외면한 문제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20세기 서구사회는 군림을 위해 제3세계의 고혈을 뽑아냈다. 산업의 발달을 위해 노동자를 착취했고,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 동물의 희생을 당연시했다. 신을 죽이고 선 인간의 오만은 어느 순간 도를 넘었다. 신의 권위가 인간을 억압했던 것과 같이, 끝없이 팽창한 인간의 권위가 같은 인간을, 또 생태계를 억압하고 있다. 환경오염과 그로 말미암은 기후위기, 각종 인권 문제 뿐 아니라 지구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 역시 인간사회에 울리는 빨간불이다.
 
이에 저자는 ‘뤼시엥 스페즈’와의 인터뷰를 통해 다시 한 번 인문주의의 실현을 강조한다. 현대인은 때때로 기술의 진보가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은 결코 도덕적 진보가 아니다. 생산의 분배와 투명성 재고, 사회 통합의 방안 등,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 해방의 방법은 사회 구성원이 모색해야하는 숙제다.
 
『비판 인문학 100년사』는 각 시대 국제사회 흐름과 굵직한 역사적 사건 등 시대적 배경을 집약적으로 제시한다. 복잡한 20세기 사상사를 한 눈에 파악하고 긴 안목을 얻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새로운 사회, 새로운 문제를 바라보는 바람직한 자세를 알 수 있다.

전자신문인터넷 구교현 기자 ky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