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과학향기]A도 아니고, B도 아닌, C형 간염 바이러스란?

염증(炎症)이란 원래 외부의 유해한 자극에 대해 생체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일으키는 다양한 생체 보호 반응을 말한다. 염증 그 자체는 우리 몸의 면역세포들이 제 할 일을 다 하고 있다는 증거이지만, 늘 그렇듯 전투 상황이 지속되면 아군의 민간 피해가 훨씬 더 큰 법이다. 특히나 '우리 몸의 조절 기관'인 간에 일어난 간염의 경우 만성이 되면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치명적인 간질환인 간경화나 간암이 발생할 수도 있어 더욱 무시할 수 없다.

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그런데, 간염이라는 단어는 '간에 염증이 생겼다'는 결과적인 증상만을 표현할 뿐, 인플루엔자나 코로나-19 감염증처럼 직접적인 병인을 의미하는 말은 아니다. 간에 염증을 일으키는 물질은 매우 다양하지만, 이 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이러스성 간염'으로, 전체 간염 환자의 95%가 바이러스가 원인이다. 바이러스성 간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Hepatitis Virus)는 총 6가지가 알려져 있는데, 각각의 바이러스는 바이러스의 종류도, 특성도 전혀 다른 독립적인 바이러스다.

지난 10월 5일, 스웨덴의 카롤린스카의대 노벨위원회는 하비 알터, 마이클 호튼, 찰스 라이스를 2020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며, 그 이유를 “1970년대까지 '미지의 감염원에 의한 원인불명의 간염'을 일으키는 원인인 C형 간염 바이러스의 정체를 밝혀내어, 혈액매개간염(blood-borne hepatitis)과 싸우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공로를 치하하기 위함이다”라고 밝혔다.

◇간염에도 종류가 있다

간염에도 종류가 있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하나는 주로 오염된 음식을 통해 소화기로 감염되어 간에 급성 염증을 일으키지만 별다른 후유증이나 손상 없이 회복되는 종류의 간염이 있다. 다른 하나는 오염된 주삿바늘이나 수혈용 혈액 등을 통해 감염되어 수십년 동안 서서히 진행되어 만성 간염을 일으키고 급기야는 간을 완전히 망가뜨리는 간염이 있다. 두 종류의 간염은 그 양상이 매우 달라 전자를 A형, 후자를 B형 간염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들을 일으키는 원인이 밝혀진 건 한참이나 뒤의 일이었다.

1965년 미국의 바루크 블럼버그는 B형 간염의 원인이 되는 헤파드나바이러스과에 속하는 바이러스(그는 이 공로로 1976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를 발견했고, 1973년 미국의 로버트 퍼셀이 이끄는 연구진이 피코르나바이러스과에 속하는 A형 간염 바이러스를 발견하여, 이제 구강을 통해 전염되는 간염은 A형 간염 바이러스가, 혈액을 통해 감염되는 간염은 B형 바이러스가 원인임을 알게 됐다.

이 시기 이후, 모든 헌혈용 혈액에 대해 B형 간염 바이러스 검사를 먼저 실시한 후 수혈하는 방식이 도입되어 수혈로 인한 간염 전파율은 극적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1970년대 당시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일하던 하비 알터 박사는 이렇게 수혈용 혈액에 대해서 철저한 검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혈액을 통한 간염이 전파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즉, A형 간염도 B형 간염도 아닌 제 3의 간염(non-A, non-B hepatitis virus)의 존재를 증명한 것이다.

하지만, 제 3의 간염을 일으키는 원인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분명히 바이러스인 듯 한데, 이 바이러스를 간염에 걸린 환자에게서 온전하게 분리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마이클 호튼 박사다. 그는 생물체가 어떤 질병에 걸리게 되면 그에 대한 항체를 만든다는 것을 이용해, 간염에 걸린 환자들의 항체를 조사해 여기서 역으로 바이러스의 유전 구조를 확인해내는 데 성공한다.

C형 간염 바이러스를 발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하비 알터, 마이클 호튼, 찰스 라이스 박사. (출처: 노벨위원회)
C형 간염 바이러스를 발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하비 알터, 마이클 호튼, 찰스 라이스 박사. (출처: 노벨위원회)

◇C형 간염 바이러스를 분류하다

이 바이러스는 기존에 알려졌던 두 간염 바이러스와는 전혀 다른 플라비바이러스과에 속하는 RNA 바이러스였다. 하지만 이렇게 발견된 바이러스가 정말로 간염을 일으킬 수 있을까? 독일의 세균학자 로베르트 코흐의 공리에 의하면 어떤 감염원이 특정 감염병의 원인으로 확정되기 위해서는 ①특정 질환의 환자에게서 그 감염원이 다수 발견되어야 하고 ②감염원이 순수 분리되어야 하며 ③분리한 감염원을 면역력이 없는 개체에게 주입했을 때 같은 질병을 일으켜야 하며 ④이렇게 병에 걸린 개체에게서 ①에서 찾은 감염원이 동일하게 발견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 그러니 이렇게 분리해낸 신종 바이러스가 정말로 다른 종류의 간염의 원인이 되는지를 밝혀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바로 찰스 라이스 박사였다. 찰스 라이스 박사는 침팬지를 이용한 동물실험을 통해 이 바이러스가 세 번째 종류의 간염의 원인임을 밝혀내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이 바이러스에는 C형 간염 바이러스라는 이름이, 이들이 일으키는 질환은 C형 간염으로 단독으로 분류되었다. 드디어 인류는 간염을 퇴치할 수 있는 세 번째 카드를 쥐게 된 셈이다.

C형 간염 바이러스의 현미경 사진. (출처: wikipedia)
C형 간염 바이러스의 현미경 사진. (출처: wikipedia)

이렇게 감염 경로가 밝혀져 있고 그 원인까지 밝혀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는 아직도 7000만 명이 넘는 환자들이 C형 간염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A형 간염과 B형 간염이 효과적인 백신이 도입되어 그 감염률이 점차 떨어지고 있는 것과는 달리, C형 간염은 아직까지 백신 개발이 되지 않아 본격적인 예방은 아직 어렵다. 그러나 다행히도 C형 간염의 경우, 꾸준한 연구를 통해 바이러스를 직접 공격하는 다양한 직접작용항바이러스(Direct Acting Antivirals, DAA)들이 개발되고 있고, 이들의 완치율도 높은 편이다. 현재 국내에서 사용 가능한 C형 간염 치료제들은 10여 종에 이르며, 이전보다 치료 효과도 좋고 부작용도 적은 약제들이 속속 보급되고 있어 C형 간염으로 인한 합병증과 이로 인한 사망률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해마다 7월 28일은 세계보건기구와 세계간염연합이 2010년부터 제정한 '세계 간염의 날(World Hepatitis Day)'이다. 이번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모든 종류의 간염 바이러스들에 의한 백신 보급과 치료제의 보급이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돌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것이 '인류를 위해 공헌한 이들을 치하하는' 노벨상의 의미를 더욱 널리 알리는 일이 될 테니까.

글: 이은희 과학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