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앱 로빈후드 '의적서 도적으로'...게임스탑 사태가 남긴 것

주식 앱 로빈후드 '의적서 도적으로'...게임스탑 사태가 남긴 것

증권·IT업계는 로빈후드와 게임스탑(GME)으로 뜨겁다. 개인투자자들의 반란을 이끈 '의적' 로빈후드는 한순간 '도적'이 됐다. GME 주가는 급등락을 반복했고, 사태가 심각해지자 미국 정치권까지 개입했다. GME 사태가 남긴 것은 무엇일까.
 
◇로빈후드 앱, 절차 간소·수수료 폐지로 MZ세대에 인기

로빈후드는 2015년 출시된 주식 거래 앱이다. 전설의 의적 로빈 후드에서 이름을 따왔다. 블래드 테네브 로빈후드 창업자는 "거래 수수료로 폭리를 취하는 월가를 규탄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개인투자자들은 로빈후드 앱으로 브로커나 수수료 없이 쉽게 주식을 사고 팔 수 있다. 간소화한 절차와 수수료 폐지로 로빈후드는 미국 MZ(밀레니얼·Z)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로빈후드는 최근 하루 100만건의 앱 다운로드 건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로빈후드 사용자는 지난해 말 기준 2,000만명에 이른다.

◇개미와 헤지펀드 '게임스탑' 둘러싼 전쟁

사진=게임스탑
사진=게임스탑

로빈후드가 이름처럼 '영웅'이 된 건 지난해 말 미국 개인투자자들이 월가의 헤지펀드와 전면전을 벌여 승리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면서부터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게임 유통사 '게임스탑'이 있었다.
 
게임스탑(GME)은 1990년대 미국 비디오게임 시장을 주름잡던 오프라인 게임 유통 회사다. 게임 시장이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매출과 실적이 악화됐다.
 
GME 하락세를 예상한 대형 헤지펀드들은 공매도에 나섰다. 공매도는 특정 주식 가격이 내리는 데 배팅해 미리 팔고, 이후 주가가 하락하면 싼값에 사들여 차익만큼 이득을 얻는다.
 
개미들은 공매도를 주도하는 대형 헤지펀드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거액으로 주가를 움직여 폭리를 취했기 때문이다. 게임스탑으로 유년기를 보낸 밀레니얼 세대의 추억과 향수도 한몫을 했다.
 
개미들은 미국 인기 커뮤니티 레딧에 토론방 '월스트릿벳츠(WSB)'를 만들어 소통하며 집단 매수에 들어갔다. GME 주가는 폭등했다. 일주일 만에 61달러에서 530% 오른 325달러가 됐다. 지난 1월 월간 상승률만 1600%다.
 
공매도를 주도한 헤지펀드들은 큰 손해를 봤다. WSJ은 손해액을 135억달러(약 15조원)로 추정했다.
 
◇ 1월 말 무슨 일이 있었나...로빈후드, GME '매수 제한'
 
공매도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1월 28일, 로빈후드는 갑자기 GME를 포함한 특정 주식 매수를 제한한다.
 
매수 제한으로 구매자는 줄고, 공매도 세력의 압박은 계속됐다. 고공행진하던 GME 주가는 폭락을 거듭했다. 로빈후드는 이후 제한을 완화하다 지난 4일 완전히 해제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개미들은 분노했다. 미국 정부나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아닌 '일개 증권 거래 앱' 로빈후드가 자의적 판단으로 주식 매수를 금지시킨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개미들은 로빈후드가 월가의 자본과 결탁해 이런 일을 벌였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대형 기관 투자금에 의존하는 로빈후드가 GME 공매도로 손해를 본 헤지펀드의 눈치를 보고 개인투자자를 막았다는 것이다.
 
로빈후드는 증권사에 데이터를 제공하고 수익을 얻는다. 그런데 헤지펀드 시타델이 투자한 멜빈캐피털이 이번 GME 공매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개미들은 로빈후드가 헤지펀드의 압력을 받아 멜빈캐피털을 구하기 위해 매수 제한 조치를 취했다고 주장했다.
 
로빈후드는 "헤지펀드가 주식 거래 제한을 압박했다는 소문은 거짓"이라며 "주가 급변동으로 미국 증권정산소(NSCC)가 요구하는 의무예치금을 맞추기 위해 변동성이 큰 일부 주식의 매수를 제한하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진퇴양난 로빈후드...美 정치권까지 개입
 
로빈후드는 증권당국의 조사를 받게 됐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투자자들에게 불이익을 줬거나, 특정 주식 거래를 과도하게 억제했을 가능성이 있는 조치를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정치권도 개입했다. 2일(현지시각) CNBC에 따르면 '월가의 저승사자'라 불리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 의원은 테네브 CEO에게 "GME 등 거래 제한 조치를 해명하라"는 서한을 보냈다.
 
워런 의원은 "로빈후드와 금융사의 관계를 일반 투자자들이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이들의 관계가 고객에 대한 의무를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하원 금융의원회는 오는 18일 로빈후드를 상대로 청문회를 개최하고 이번 사태를 조사할 예정이다.
 
◇로빈후드·GME 사태가 남긴 것...해외주식 '주의보'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개미 '다윗'이 거대 자본 '골리앗'을 물리친 통쾌한 복수극이라 했다. 하지만 골리앗이 정말 무너졌을까.
 
한 번의 돌팔매질에 골리앗은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주가를 흔드는 '큰 손' 골리앗의 존재를 다시 한번 확인했을 뿐이다.
 
'제2의 게임스탑'이 나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른바 '서학개미'로 불리는, 해외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가 늘고 있기 때문에 피해도 우려된다.
 
실제로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기준 국내 투자자의 게임스탑 하루 결제금액은 1억3968만달러(약 1560억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서학개미들이 집중적으로 거래했던 테슬라(1억2386만달러·1380억원)와 애플(6633만 달러·720억원)을 훌쩍 뛰어 넘는 금액이다.
 
뜨거웠던 GME 사태가 월가의 구조를 바꾸는 '단초'가 될까? 아니면 일순간의 '해프닝'으로 끝날까? 업계는 물론 개인투자자들도 주목하고 있다.

전자신문인터넷 양민하 기자 (mh.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