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반도체 패권 전쟁, 소부장에 달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반도체 영상회의에 참석하며 웨이퍼를 들어올리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반도체 영상회의에 참석하며 웨이퍼를 들어올리고 있다.

세계 반도체 시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반도체 수요 급증으로 곳곳에서 극심한 품귀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칩을 위탁생산하는 파운드리 업체가 가장 바쁘다. 삼성전자와 대만 TSMC 등 파운드리 업체는 첨단 반도체 팹을 '풀가동'하면서 생산 능력을 한껏 늘리고 있지만 밀려드는 주문량 감당은 쉽지 않아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도체 전쟁'을 선포했다. 지난 2월 말과 이달 12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 칩과 웨이퍼를 들어 보이며 현지 반도체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겠다는 포부를 수차례 밝혔다. 반도체 인프라 투자에 쏟아붓기로 한 액수만 해도 500억달러(약 56조원)가 넘는다.

이 기조에 따라 반도체 팹이 미국 여러 지역에 들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인텔은 파운드리 생산라인을 포함한 팹 2개를 애리조나주 내에 짓겠다고 발표했다. 이보다 앞서 대만 TSMC도 미국에 약 40조원을 들여 신규 파운드리 팹을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도 미국 오스틴을 비롯해 여러 주와 투자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반도체 라인이 늘수록 장비 공급 부족 현상도 심화한다는 것이다.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 램리서치, ASML, 도쿄일렉트론 등 소수의 4개 업체가 60~70% 점유율을 차지하는 장비 시장이 폭증하는 팹 수요를 감당하기엔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 TSMC 등 반도체 제조사들이 최근 각 장비 업체에 협조를 요청하며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이에 따라 반도체 전쟁의 핵심은 '반도체 장비'가 될 공산이 높다. 향후 직면할 반도체 인프라 전쟁에서 국내 칩 제조사가 뒤지지 않으려면 국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생태계를 더욱 탄탄하게 구축하는 등 다가오는 상황을 준비해야 한다. 국내 칩 제조사와 소부장 업체가 협력해서 국산화 및 현지화 사례를 축적하는 것이 절실한 때다.

이를 위한 기업 간 협력도 중요하지만 정부의 제도적 지원과 투자도 필요하다. 지난 2019년 일본의 대한국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로 국내 반도체 생태계가 송두리째 흔들린 상황이 미국의 자립화 선언 이후에도 갑작스럽게 찾아올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