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인증 육성하겠다던 정부, 정작 빅테크에만 힘 실었다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일대에서 한 시민이 네이버 앱을 이용해 잔여 백신을 조회하고 있다. 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일대에서 한 시민이 네이버 앱을 이용해 잔여 백신을 조회하고 있다. 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

정부가 코로나19 백신 예약시스템을 보강하면서 간편인증 수단으로 카카오·네이버·패스(PASS) 인증만 택하자 사설인증서 사업자 사이에서 불만과 아쉬움이 나오고 있다. 사전에 전체 사설인증서 사업자에게 참여 의향을 묻는 절차 없이 기존 잔여백신 예약시스템에 참여한 빅테크 중심으로 참여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시스템을 급하게 보강하다가 벌어진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기존 플랫폼을 무기로 이미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 빅테크에 정부가 힘을 실어준 격이 됐다는 지적이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이 예방접종 예약시스템을 대폭 개선하는 과정에서 전체 사설인증 사업자의 의향 파악 없이 빅테크 사업자인 카카오·네이버와 이동통신사 패스 인증만 신규 추가,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애초 정부는 공인인증서를 폐지하고 다양한 사설인증서가 성장하는 시장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대규모 사용자를 보유한 서비스 중심으로 사업자를 선정,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지 않은 셈이 됐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은 백신 접종 예약시스템을 대폭 개선하는 과정에서 본인인증 수단으로 카카오·네이버·패스의 간편인증 체계를 새로 도입했다. 이에 따라 금융결제원 공동·금융인증서와 휴대폰 인증 외에 새롭게 카카오·네이버·패스 인증을 활용해 예약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추진단은 지난 4월부터 예약시스템을 운영한 결과 본인인증 기능을 가장 큰 과부하 요인으로 꼽았다. 이에 따라 본인인증 기능을 민간 클라우드로 이관해 서버·네트워크를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예약 대기 후 본인인증을 거치는 기존 프로세스는 초기 예약 안내 후 본인인증을 하는 순서로 조정했다. 기존 본인인증은 금융인증서와 휴대폰 인증만 가능했다. 그러나 실 사용자가 휴대폰 인증으로 몰리면서 먹통을 일으키자 카카오·네이버와 패스 인증을 신규 간편인증 수단으로 추가했다.

문제는 전체 사설인증서 사업자에 대한 사전 고지 없이 간편인증 수단을 결정한 점이다. 이에 따라 토스, 국민은행(KB모바일인증서), NHN페이코, 삼성 패스 등이 저변 확대 기회를 잃게 됐다.

한 사설인증서 사업 관계자는 “국민 안전을 위한 서비스여서 기업 이익을 바랄 수 없는 사안이지만 이번 예약 연령대가 사설인증서 핵심 사용 연령층이다 보니 기회 자체가 없었다는 점은 크게 아쉽다”고 말했다.

다른 회사 관계자는 “백신 예약 사이트의 먹통 사태가 벌어져 이를 빠르게 개선하려다 보니 사설인증서를 충분히 검토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다”면서 “그러나 이런 비상사태에 딱 떠오른 브랜드가 카카오·네이버라는 점에서 빅테크 플랫폼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 다시 한 번 실감했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시스템 개선에서 본인인증을 담당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짧은 기간에 시스템을 개선하다 보니 전체 사설인증서 사업자에 대한 고지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사업 준비 기간이 워낙 짧다 보니 잔여백신 예약 서비스 제공사인 카카오와 네이버를 우선 사설인증 제공 기관으로 결정하게 돼 다른 사업자들이 아쉬워하는 분위기를 잘 알고 있다”면서 “참여 의향이 있는 사업자가 백신 예약 서비스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