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대학포럼]<32>덜 섭섭해하며 잘 뛰어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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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초연결, 초융합, 초지능, 초실감 등 키워드가 많이 들리고 의미가 부여되는 요즘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게 인류는 무언가를 열심히 또다시 '뛰어넘어야' 하는 삶을 기대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파고를 좀 더 세련되게 뛰어넘기 위해 인류가 놓쳐 온 소중한 감정 가운데 하나가 '섭섭함'이다.

초연결·초융합·초지능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게 되면 인류가 시스템에 노동 수단의 대부분을 내어주게 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남게 된 '보상' 차원의 키워드가 시각·청각·촉각 등 감각을 디지털화해서 실제 상황처럼 느끼게 하는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대화면 파노라마 영상 등 감각 몰입형 기술에 의해 구현되는 '초실감'이 된다. 초실감에 의해 현실과 가상을 뛰어넘게 되는 생활방식이 일상으로 될 것으로 전망한다. 인간의 자유로운 정신과 감각 활동 자체를 노동으로 간주하는 미래 모습으로 그리기도 한다.

이렇듯 4차 산업혁명이 눈앞에 다가왔지만 세상은 여전히 '서운함과 아쉬움'으로 가득 차 있고, 심지어 심해지고 있다. 왜 서운할까. 나를 둘러싼 상대방과 상황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아쉬울까. 세상일에서 노력했는데 목적한 결과에 도달하지 못했거나 열심히 했지만 이를 세상이 알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능한 모든 노력을 목표로 한 일에 다 기울이지 못해서 아쉬워하는 경우도 있다. 이 두 가지 감정을 묶어 '섭섭함'이라고 한다. 이 섭섭함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한다. 또 유발된 갈등의 해소가 때때로 현 사회 시스템에 적합하지 못한 경우에는 사회적 부담과 처리 비용 상승이라는 상황에 이르게 한다.

아직은 4차 산업혁명 시대로 말미암은 혜택과 해악이 어떻게 인류에게 주어질지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지금은 인류가 그동안 많이 노력해서 개발한 기술과 개발의 주요 덕목인 효율성 및 생산성이 초연결·초융합·초지능·초실감이라는 옷을 입고 아름답고 멋지게 될 미래 청사진을 보고 있다. 한편에서는 우리 일상에 침투해서 서운함과 아쉬움을 줄 수 있는 건 아닌지 그 방향에 대해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술과 개발 과정에 '융합'이라는 키워드에 맞춰 각기 다른 길을 가던 사람들을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기치와 방향 아래 모이게 하고 융합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섭섭함을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 혜안을 발휘해서 적절한 해법 찾기에 함께 고민할 필요도 있다. 공대 가운데에서도 높은 입시 결과와 취업률을 보이는 인기 학과를 일컬어 '전화기'(전기전자공학, 화학공학, 기계공학)니 '컴바화'(컴퓨터학, 바이오학, 화학)라 표현하며 관심이 몰려 있는 게 현재의 사회상이다.

4차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주요 기업이 디지털전환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으며, 신사업에 공격적 투자를 아끼지 않는 등 인력 수요가 많은 분야가 계속 바뀌고 있다.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사업에 이를 견인할 '전화기' '컴바화' 분야에 집중하게 하고 이들 중심으로 융합하는 과학기술계 모습에 공학자로서, 교육자로서 전적으로 동의하며 이에 적응하려 한다. 이들을 통해 잘 뛰어넘고자 하는 4차 산업혁명의 네 가지 키워드에도 깊이 동의한다.

다만 이를 행하고자 하는 연구자와 개발자, 당장은 이를 행하기 어려운 다른 분야의 많은 사람, 이를 순방향 또는 역방향으로 겪게 될 사회 구성원들에게 '혹시나 찾아올 섭섭함은 없는지' 잠시 쉬면서 살펴보는 정부와 국가의 배려 및 살핌을 기대한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세상에 늘 사용돼야 하는 아집에 대해서도 지식집단은 초연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일부 지식집단의 이기주의 때문에 사회의 물리적 자원과 시간 등 요소가 낭비되면서 파장이 일기도 했다. 구성원 모두가 흡수하고 감수해야 할 앞으로의 상황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번에는 인류가 세련되게 혁명의 파고를 뛰어넘었으면 싶다.

이진규 이화여대 식품공학과 교수 jkrhee@ewh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