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인증서만 쓰는데"...자체 인증서 고민 깊은 은행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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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인증서 서비스를 시작했거나 사업을 준비하는 시중은행 고민이 깊어졌다. 마이데이터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로 은행 서비스 확대가 예상됨에 따라 자체 인증서 사업을 준비했는데 시장에서 빅테크 사설인증서 쏠림 현상이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수십억원 유지비를 쏟아부어야 하지만 수익창출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분위기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신한은행이 자체 개발한 사설인증서로 전자서명인증사업자 인정을 획득한데 이어 국민은행이 인정 심의를 앞두면서 업계에서 자체 인증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나은행, 농협은행, 우리은행까지 모두 사설인증서를 직접 개발하면서 시장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이 모두 사설인증서 시장 진출을 노리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별도 물적요건을 갖추고 매년 수십억원에 달하는 유지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사업인데 여기서 뚜렷하게 수익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은행은 비영리법인인 금융결제원의 공동인증서(옛 공인인증서)와 간편인증 기능을 갖춘 금융인증서를 대표 인증서로 사용해왔다. 공인인증서가 폐지되고 사설인증시장이 열리면서 빅테크가 자체 인증서를 선보임에 따라 국민은행이 은행권에서 가장 먼저 사설인증서 시장에 뛰어들었다.

국민은행의 사설인증서 시장 진출은 다른 은행까지 자체 인증서를 개발하게 만든 트리거가 됐다. 국민은행은 현재 개인 고객 대상으로 사설인증서를 서비스하고 있지만 이를 소상공인과 개인사업자로 확대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다른 은행도 사설인증서 사용자 범위 확대를 준비하고 있다.

마이데이터도 은행이 자체 인증서를 개발하게 만든 요인이다. 자체 인증서를 갖추고 전자서명인증사업자 인정을 획득하면 마이데이터 통합인증과 공공분야 전자서명사업 등에 참여할 수 있다.

무엇보다 마이데이터 통합인증시 자사 고객이 애플리케이션(앱)에 접속해 어떤 기능을 얼마나 오랫동안 사용하는지 파악하는 과정에서 경쟁사 인증서에 데이터 제공 빌미를 주지 않으려는 의도가 핵심이다.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국민은행의 경우 자체 금융그룹 계열사와 일부 공공기관에 KB모바일인증서를 적용했지만 네이버·카카오 인증과 수요 차이가 상당하다. 다수 공공서비스 분야로 적용을 확대하고 있지만 플랫폼 경쟁력이 무기인 빅테크 기업의 인증서 수요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최근 코로나19 백신접종 사전예약 서비스에 카카오·네이버 인증서와 이통사 패스 인증만 적용된 배경도 같은 맥락이다. 국민은행 인증서는 물론 토스, NHN페이코, 삼성패스 등 사설인증서는 고려 대상이 되지 못했다.

당시 정부는 “시스템 준비 시간이 촉박해 당장 사용자가 많은 기준으로 사설인증서를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또 “단기에 시스템 안정성까지 고려해야 해서 다수 사설인증서 서비스를 적용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업계에서는 백신 접종 사전예약에 적용된 공동인증서, 금융인증서, 카카오 인증서, 네이버 인증서, 패스 인증서 중 카카오와 네이버 인증에 접속 수요 상당수가 몰렸다고 추산하고 있다. 지난 연말정산에 사설인증서가 처음 도입됐는데 당시 카카오 인증서가 전체 5종 사설인증서 중 가장 많은 사용건수(586만건)를 기록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마이데이터 통합인증시 고객의 사용 흐름을 온전히 자사 시스템 안에 종속시키기 위해 자체 인증서 개발 경쟁이 치열한 것”이라며 “하지만 매년 사업자 인정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드는 비용과 시간 부담이 있는데다 외부로 사설인증서 서비스 범위를 확대하기가 어렵고 고객이 빅테크 인증서를 선호하는 경향이 심화하고 있어 은행이 이 사업에서 원하는 경쟁력을 제대로 갖출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