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대학포럼]〈47〉탄소소재산업 진흥, 탄소중립 실현과 수소경제 활성화의 돌파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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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탄소 잡기에 신경이 온통 곤두서 있다. 이산화탄소가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주원인 물질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소비량을 동등하게 만드는 탄소중립이라는 목표가 나왔고, 세계 각국은 목표 실현을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와 함께 화석연료를 아예 수소로 대체함으로써 이산화탄소 배출을 제로로 만들면서 수소경제를 실현하자는 논의도 한창이다.

탄소는 크게 보면 석탄을 비롯한 화석연료와 우리 몸을 비롯한 모든 유기물질의 근간이 되는 소재 형태로 우리 곁에 있다. 이산화탄소는 연료가 연소하거나 소재가 분해될 때 발생한다.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분리·포집·저장하는 해결사가 바로 탄소소재다.

탄소소재로 자동차 차체 무게를 줄이면 연료 사용량을 줄일 수 있어 결과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감소한다. 청정수소를 제조할 때도 탄소소재가 긴요하게 쓰인다. 석유화학 정제공정에서 나오는 부생수소는 이산화탄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 이를 탄소소재를 이용해 제거하면 회색수소가 청정수소인 블루수소로 업그레이드된다.

그 과정에서 포집한 탄소는 다시 자원화 과정을 거쳐 메탄·에탄올 등으로 전환시켜 다시 탄소소재 제조 원료로 활용할 수도 있다. 즉 탄소는 자원화와 소재화 등 2개 과정을 통해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소비량이 균형을 이루는 선순환의 폐회로적 전주기 생태계가 가능하다.

얼마 전 폐막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한국은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감축 목표를 2018년 대비 40%, 메탄 배출량도 2020년 대비 30% 감축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쯤 되면 우리 경제, 특히 제조업 분야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 몸으로까지 번졌다.

정부도 이 같은 상황을 인식하고 정책적 해결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적 해결 방안이 절실한 각론으로 들어가면 실현 가능성 면에서 공감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이런 현실에서 정부의 각별한 주목을 촉구하고 싶은 것이 바로 탄소소재산업 진흥에 관한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탄소소재는 탄소중립과 수소경제 활성화에 필수불가결한 소재다. 위기적 상황을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카드로 이산화탄소 문제를 탄소소재로 해결하는 정책, 즉 이탄제탄(以炭制炭)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

우리 탄소소재산업은 현재 유아기 단계에 있다. 부가가치가 가장 높고 전기차·수소차 경량화 및 우주항공 분야에도 필수적 소재로 알려진 탄소섬유는 겨우 연 2000톤 수준 생산량이다. 일본은 도레이(Toray) 1개 회사만 해도 연간 4만2600톤 규모다. 이산화탄소 포집용 다공성 탄소소재는 아직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전통적 다공성 탄소소재인 활성탄으로는 유효한 대응이 어렵다. 원소재만 그런 것이 아니다. 원소재를 이용한 다양한 중간 및 최종 제품으로의 전개를 위한 산업생태계 자체가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다.

탄소소재산업은 요구되는 요소기술 난도도 높고 전략물자와 관련성도 높아 기술 확보나 산업생태계 형성이 기업 또는 개인 차원에서 자생하기 어렵다. 국가의 정책적 지원이 필수적으로, 집중 요구되는 분야다. 한국탄소산업진흥원이 최근 출범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공급 및 가치사슬을 따라 건강한 탄소소재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진흥하는 일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탄소소재산업은 대기업이 담당할 수밖에 없는 탄소섬유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탄소소재 생산을 중소·중견기업이 담당할 수 있다. 중소·중견기업은 탄소산업 생태계에서 허리에 해당한다. 정부는 세계적 수준의 중소·중견기업 육성을 위한 모든 정책 수단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세계적 수준의 기술 확보는 물론 기술 운용을 위한 우수 인력이 강소기업에 원활하게 공급될 수 있게 하는 인력 양성과 지원을 위한 심도 있는 대책이 있어야 한다. 이들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을 안정적으로 우선 소비해 줄 수 있는 시스템, 예컨대 의무구매 또는 국방 분야 선구매 등을 일정 기간 제도적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반도체를 처음 육성할 때 이와 비슷한 정책을 폈음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탄소소재산업 육성은 현 세대가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임과 동시에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다. 탄소중립을 위해 그 어떤 노력도 마다하지 말아야 할 이 시점에서 탄소소재산업 육성이라는 이탄제탄 방안을 정부가 진지하게 고려해 주기를 바란다.

박종래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crpark@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