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95>걸림돌을 통로 삼을 때

콘칭(Conching). 초콜릿 만드는 과정의 일부다. 초콜릿 반죽을 제법 뜨거운 상태로 몇 시간이고 젓는다. 이 긴 노동의 과정에서 초콜릿 입자는 더 작아지고, 신맛이나 쓴맛을 줄인다. 초콜릿의 부드럽고 조화로운 맛은 이렇게 탄생한다. 어쩌면 초콜릿의 깊은 맛은 이 질고가 만든 극단의 아름다움일지 모른다.

혁신에도 상반된 힘이 존재한다. 하나는 혁신의 원천, 다른 하나는 걸림돌이다. 그러나 이 이분법에는 허점이 있다. 비록 가설이지만 역경이 초래하는 병목과 제약은 해결책을 찾는 통로가 된다는 것이다. 사례는 꽤나 쉽게 찾을 수 있다.

산부인과 의사 캐머런 파월(Cameron Powell)은 걱정거리를 놓을 수 없었다. 출산을 앞둔 임부가 많았지만 모두를 항상 모니터할 수는 없었다. 자칫 판단이 늦어지다간 임부와 아이가 위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방 저 방을 옮겨 다녀야 하고, 출산 수술이라도 집도하는 도중에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자신의 노력으로 감당할 수 없었다.

어느 날 평소 알고 지내는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자 트레이 무어(Trey Moore)가 뭔가 괜찮은 아이디어가 없냐고 묻는다. 파월은 아기의 심장박동만 볼 수 있어도 좋겠다고 말한다. 무어는 얼마 뒤 임부용 에어스트립(AirStrip OB)이란 스마트폰 앱을 개발한다. 스마트폰 화면엔 태아의 박동과 파형을 볼 수 있었다. 에어스트립은 얼마 뒤 애플 콘퍼런스에 초대받은 8개 앱 가운데 하나가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2008년 경기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프록터앤드갬블의 주가도 10% 넘게 떨어진다. 새로운 비즈니스를 찾고 있었지만 마땅한 게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 주고객인 베이비부머들은 나이를 먹어 가고 있었다.

고심 끝에 자동차 세차업을 시도해 보기로 한다. 이 분야엔 문외한이지만 가정용 세척제로는 최고 브랜드 아니런가. 마스코트로는 친숙한 미스터 클린(Mr. Clean)을 내세운다. 대머리에 근육질 몸매의 미스터 클린은 왠지 믿음직해 보였다. 최첨단 시설에 라운지, 커피바, 무료 인터넷 서비스까지 제공했다. 세차 시장을 석권한 건 아니지만 직원 1인당 매출 30만달러로 꽤나 수지를 맞추고 있었다.

이런 점은 인도 캐드베리(Cadbury in India)도 마찬가지다. 1948년에 영국 캐드베리 지사로 설립됐다. 이후 최고의 초콜릿 자리를 놓친 적이 없었다. 데어리 밀크 브랜드는 인도 초콜릿의 '황금 표준'이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어찌어찌 잘 배송해도 뜨듯한 매장에서 금세 녹아내리기 일쑤였다.

캐드베리는 정제 기술을 개발한다. 콘칭 후에 정제를 한 번 더 하면 더 견고한 설탕 구조체가 만들어지고, 일반 초콜릿보다 훨씬 더 높은 온도에서도 제 모양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초콜릿은 어차피 녹는다는 점에 착안했다. 초콜릿을 크래커로 감싸고, 짜서 먹는 튜브형 초콜릿을 만들었다. 심지어 캐러멜로 둘러싸서 깨물면 초콜릿이 터지듯 나오게 했다. 이 덥고 습기 많은 곳에서 영국 초콜릿은 새 모습으로 탄생했다.

역경이 혁신을 촉진할까. 동의하기 어려운 이 가설에 내밀 사례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최고의 기업 그 자신이다. 한때 다우존스지수 30대 기업 가운데 18개사가 경기 대침체기에 설립됐다.
우리는 성공의 역학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성공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성공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어떤 성공은 풍요 속에서 싹이 트지만 다른 어떤 성공은 모진 토양에서 태어나 그 토양마저 비옥하게 재창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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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