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대학포럼]<53>국가경쟁력, 대학투자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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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보통 초·중·고교를 거쳐 대학을 졸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6년 내외이다. 대학원까지 더하면 대략 20년의 시간을 교육에 투자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공부의 양이나 난이도가 20년간 동일할까? 점점 학습해야 할 양도 많아지고 어려워지는 것이 지극히 상식적일 것이다. 이는 초·중·고교 과정의 교육과 대학 교육의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초·중·고교에서는 만들어진 지식을 학습하면 되지만 대학에서는 정립된 지식을 학습함과 동시에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에 고등교육이 보다 많은 재원 투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부분 국가가 이러한 투자증가 패턴을 따르고 있다. OECD 통계를 보면 전반적으로 초·중·고교에 투자되는 재원보다 대학에 투자되는 재원 규모가 훨씬 크며, 초·중·고교 투자가 높은 나라가 대학에도 적극 투자한다. 대학재정 투자 톱5 국가는 룩셈부르크, 미국, 영국, 스웨덴, 노르웨이이며, 이들은 초·중·고교 투자액의 두 배 가까이를 대학교육에 투자하고 있다. 이러한 공격적 재정투자를 바탕으로 이들은 글로벌 혁신을 선도하고 국제 고등교육 시장에서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다.

OECD 회원국 중 이러한 패턴에서 벗어난 국가가 하나 있는데 바로 한국이다. 우리나라 초·중등 교육 투자는 세계 6위 수준이지만 대학에 대한 투자는 정반대 길을 걷고 있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구제금융 중인 그리스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대학생에게 투자되는 1인당 교육비가 초·중·고교 학생에게 투자되는 1인당 교육비보다 작은 유일한 국가이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원래 대학투자에 인색했던 것은 아니다. OECD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4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GDP의 약 2.3%를 대학에 투자한 바 있는데 이는 당시 1위 국가인 미국(2.9%) 다음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이 같은 정책기조가 변화하게 된 데는 두 가지 원인이 있는데 하나가 대학 등록금 동결이고 다른 하나가 인구 감소다.

올해로 14년째 동결된 대학등록금 부작용은 생각보다 크고 심각하다. 최근 10년간 물가가 18.7% 증가한 어려움 속에 비대면 학습환경 구축, 캠퍼스 클라우드 등에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열악한 재정 때문에 실험도구와 도서구입을 줄이고 비전임교원 수업을 늘리며 외국인 유학생을 무리하게 유치하고 있다. 이처럼 부실화되는 대학교육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에게 전가되고 있다.

기계적으로 배정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도 문제다. 인구 감소로 학생이 줄고 있지만 정해진 공식에 따라 내국세의 20%를 시·도 교육청에 배분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거듭된 증세로 2019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60조원을 넘어섰지만 초·중·고교 학생 부족으로 지방교육청에는 돈이 쌓이고 있다. 2019년 소진하지 못한 돈이 약 1조7000억원에 이르고 재정안정화 기금에 쌓인 돈도 2조3000억원이 넘는다. 고등교육과 초·중등교육 재정투자 양극화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산업, 복지, 과학기술, 의료, 환경 등 여러 분야의 국가정책이 있지만 공통분모가 되는 것이 바로 인재이며, 인재정책 핵심은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에 대한 상식적 재정투자가 선결돼야 한다. 등록금 동결을 물가상승률에 맞게 현실화하고 구조적 인구감소를 고려한 교육교부금 개혁이 필요하다. 대학은 인재를 양성하는 핵심기관이면서 연구를 통해 혁신을 선도하고 기업을 지원하는 혁신기관이다. 초·중등보다 돈을 쓰지 않으면서 대학 경쟁력을 논하는 것은 난센스다. 우리가 경쟁해야 할 선진국이 적극적 고등교육 투자를 통해 글로벌 경쟁에서 앞서 나가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안준모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joonmo@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