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룰 있으니 실명계좌 불필요”…독소조항 된 특금법

디지털자산 혁신 세미나
현행 비효율적인 특금법 비판
"국제기준 맞지 않아 삭제" 토로
대형 거래소 독점 부채질 지적

“트래블룰 있으니 실명계좌 불필요”…독소조항 된 특금법

가상자산거래소가 원화거래를 위해 시중은행에서 발급받는 '실명확인 입출금 계좌'가 트래블룰 시행으로 인해 불필요해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지열 한국자금세탁방지전문가협회 회장(프로비트 이사)은 11일 전경련 회관에서 열린 '디지털자산 공약 이행과 디지털 신 경제 생태계 혁신' 세미나에서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취득은 특정금융정보법상의 트래블룰 시행으로 그 존재의 의미가 없어졌으므로 삭제해야 한다”며 “국제기준에도 맞지 않는 이 독소조항 때문에 해외 가상자산거래소들이 국내 신고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행 특금법은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과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취득을 원화거래 가상자산사업자(VASP)의 신고 필수조항으로 적시하고 있다.

하지만 실명계좌를 내주는 주체가 같은 금융기관인 은행이라는 측면에서 금융당국의 '그림자 규제'의 한 형태로 보는 시각이 많다. 현재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으로부터 신고 수리를 득한 26개 가상자산사업자 중 업비트를 포함 5개 사업자만이 실명계좌를 취득한 상태다. 특히 이들의 경우 시장 점유율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독과점 문제가 지속 제기됐다.

특금법은 해외 가상자산거래소도 국내 영업 시 신고를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는 글로벌 서비스인만큼 국내 이용자를 상대로 영업을 한다는 기준이 불명확한 것이 문제다. 해외 거래소들은 한국어 서비스나 원화 표시를 중단하는 정도로 대응해 왔다.

정지열 회장은 “트래블룰 특성상 전신 송금 정보의 공유가 필수적인데, 해외 거래소는 독소조항 때문에 신고하지 않고 영업을 하고 있다”며 “국내 거래소는 해외 거래소와 거래 자체가 불법이므로, 트래블룰 시스템 연동도 송금 정보도 제공할수 없어 거래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 '가상자산 및 가상자산 사업자를 위한 지침'을 발표한 바 있다. 지침에 따르면 가상자산사업자는 상대 가상자산 사업자의 자금세탁 위험도를 평가, 고위험 사업자에게는 송금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은행들이 환거래은행 상호평가를 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만약 FATF 지침을 법 개정 없이 국내법에 적용할 경우, 같은 미신고 거래소라도 해외 거래소와 거래는 허용되는 역차별 문제가 생긴다. 즉, FATF 지침과 국내법이 충돌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원화마켓 신고 수리 조건에서 실명계좌 확보 요건을 즉각 삭제하기는 어렵다. 보완책으로는 실명계좌를 발급할 수 있는 기관으로 은행 외 증권사와 우체국을 포함하자는 방안이 거론됐다. 증권사의 자금세탁방지 능력과 블록체인을 포함 디지털 자산 발전을 담당하는 우정사업본부의 역할을 고려할 때 발급 권한을 은행에게만 주는 것이 비합리적이라는 취지다.

정지열 회장은 “실명계좌 발급 가능 금융회사 대상을 확대함으로써, 실명계좌 공급을 증가시켜 대형 거래소 독점체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형두기자 dud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