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고지신]블랙홀, 백문이 불여일견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남에게 자세한 설명을 백 번 듣는다고 해도, 실제로 본인이 눈으로 직접 한번 보는 것만은 못하다는 뜻이다. 이 말은 간접 정보보다 직접적 경험과 증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 것이다. 우리가 새로운 정보와 개념들을 머리에서 받아들일 때 눈으로 보는 시각 정보에 얼마나 깊이 의존하는지를 시사한다.

과학에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대상 가운데 하나는 블랙홀이다. 블랙홀은 어린아이들도 친숙하게 생각할 정도로 과학계를 넘어 일상에서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이전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블랙홀 이미지는 상상에 불과했다. 우리가 실제로 먼 우주 속 블랙홀을 직접 보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블랙홀을 직접 보기 위해 1세기가 넘는 시간 다양한 블랙홀 이론 및 관측 연구들이 묵묵히 이뤄졌다. 아인슈타인이 1915년 일반 상대성이론을 세상에 알린지 1년 후, 독일의 물리학자 칼 슈바르츠실트가 이로부터 블랙홀 존재를 예측하는 결과를 발표했다. 50년이 지난 1967년, 미국 이론물리학자 존 아치볼드 휠러의 블랙홀 강연을 계기로 블랙홀이라는 이름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또 지구상의 여러 전파망원경이 검출하는 전자적 신호들을 수학적으로 합쳐 영상을 재구성하는 초장기선 전파간섭계라는 기법이 1967년에 실증됐다.

이후 블랙홀 영상을 볼 수 있는 관측 기술이 발전하는 데에는 또다시 50년 이상 세월이 소요됐다. 블랙홀 영상 획득에 충분할 정도로 고성능의 전파망원경들이 세계 곳곳에 건설되고 또한 대용량 데이터를 정밀하게 처리하는 기술이 성숙한 것은 2010년 후반의 일이다. 이러한 발전에 힘입어 2019년과 2022년, 본인이 참여하는 사건지평선망원경(EHT) 국제 공동연구단은 인류 최초로 M87 그리고 우리 은하 중심부 블랙홀 영상을 얻는 데 성공했다.

블랙홀을 직접 보게 되자 대중도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일례로 2020년 뉴욕의 근대미술관(MoMA)은 EHT 공동연구단에 M87 블랙홀 사진을 미술관 영구소장 목록에 포함하고 싶다는 의견을 전했다. 이후 실제로 MoMA 홈페이지의 소장목록에서 검색했을 때 블랙홀을 주제로 한 다른 미술품과 함께 M87 블랙홀 사진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최근 괄목할만한 발견을 뒤로 하고 천문 관측 기술과 설비들은 현재도 계속 발전하고 있다. 2030년께 더욱 많은 블랙홀의 직접 영상을 얻는 것을 목표로, 천문학자들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더욱 많은 고성능 전파망원경을 설치하고 있다.

한국도 현존하는 한국천문연구원의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을 확장해 강원도 평창에 구경이 20m를 넘는 새로운 전파망원경을 건설 중이다. 이 망원경은 2024년경부터 본격적으로 사건지평선망원경 네트워크에 참여할 계획이다. 더 나아가 가상의 전파간섭계를 지구보다 더욱 크게 만들기 위해 다양한 우주 전파망원경을 제작하는 것 또한 각국에서 논의 중이다. 이러한 기기들이 모두 완성된다면 현재보다 10배 이상 공간 분해능을 높여 수백개 블랙홀을 직접 영상화하고 이들에 대해 인구 통계와 같은 수준의 연구를 수행할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직접 보아야만 실존한다고 여기는 점이 인간의 본성에 남아있고, 블랙홀에 대한 과학계와 대중의 관심이 끊이지 않는 한 천문학자들의 더 많은 블랙홀 영상화를 위한 연구는 계속될 것이다.

김재영 경북대 지구시스템과학부 교수 jykim@k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