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대학포럼]〈75〉사용후핵연료 특별법 제정 방향에 대한 소고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

출장 전에 숙소를 예약할 때면 화장실 상태를 확인한다. 몇 년 전에 여행을 갔을 때 화장실 고장으로 곤욕을 치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이 떠오른 건 사용후핵연료 때문에 우리가 겪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로에서 배출된 핵연료다. 가압경수로형 원전 핵연료는 원자로에서 4~5년 연소 후 배출된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전 임시 저장시설에 보관된다. 임시 저장시설이 포화하면 원전은 더이상 가동하기 어렵게 된다. 국내 일부 원전 임시 저장시설의 포화가 임박했다.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의 2021년 예측에 따르면 한빛과 고리 원전은 2031년, 한울 원전은 2032년에 임시 저장시설 포화가 된다. 예측은 탈원전 정책을 반영한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바탕을 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정책대로 원전 이용이 확대되면 포화 예상 시점은 앞당겨질 것이다.

임시 저장시설의 포화가 임박한 원전을 계속 가동하려면 원전 부지 안 또는 밖에 다른 저장시설이나 중간저장시설을 확보하고, 그 시설로 사용후핵연료를 옮겨야 한다. 이들 시설도 한시적으로 보관하는 것뿐이어서 사용후핵연료를 생태계로부터 영구 격리하기 위한 처분시설이 필요하다.

한시적 저장시설에서 처분시설로 옮기기 전에 고려할 수 있는 사용후핵연료 관리 옵션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심지층에 바로 묻는 '직접 처분'이다. 다른 하나는 사용후핵연료에서 재활용이 가능한 물질을 회수하고 나머지는 저독성 물질로 변환해서 처분하는 '처리 후 처분'이다. 이와 관련해 2004년 제253차 원자력위원회 의결이 유효하다. 원자력위원회는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침에 대해서는 국가 정책 방향, 국내외 기술개발 추이 등을 감안해 중장기적으로 충분한 논의를 거쳐 국민적 공감대 아래에서 추진한다”고 밝혔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관리 옵션을 정할 때 미래 세대도 고려해야 한다. 사용후핵연료 관리가 장기간 이뤄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관리 옵션 이행과 관련해 사용후핵연료 처리를 위한 파이로 기술과 저장처분을 위한 핵심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지금의 기술 수준만으로는 미래 세대에까지 최적의 관리 옵션 선택이 쉽지 않다. 또 현재 개발하고 있는 기술 이외에도 초장심도 처분(Deep borehole) 등 다양한 기술의 타당성 연구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파이로 연구가 곧 실증 단계에 접어든다. 연구에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 미국의 사전 동의도 필요하다. 이들은 정부 정책이 뒷받침해야 가능하다. 정부는 곧 파이로 연구 지속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연구를 계속하기로 한다면 재원 확보 방안과 관리 옵션 결정에 필요한 연구 결과 산출 시점도 정해야 한다.

저장·처분 기술은 지난해부터 본격 개발하고 있다. 3개 부처가 '사용후핵연료관리핵심기술개발사업단'을 출범시키고 저장·처분 관련 핵심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사업에 2029년까지 약 4300억원이 투자된다. 3개 부처가 합심했다는 것은 이 기술이 그만큼 중요하고 필요함을 의미한다.

가장 뜨거운 감자는 부지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시설 부지 확보를 위한 정부의 노력이 있었지만 지역주민 반발 등으로 모두 실패했다.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는 부지 선정 절차 착수 이후 37년 이내에 처분시설을 확보하는 일정을 담은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의 앞날이 불투명하다. 지역사회 등의 반발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특별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투명하고 일관되게 해결할 제도적 기반이 필요해서다. 특별법에 포함될 내용에 대해 이견이 많다. 특별법은 일반법보다 제한된 범위에 효력을 미치도록 정한 법이다. 특별법에 사용후핵연료에 관한 모든 것을 담을 수 없다. 따라서 특별법은 핵심적이며 시급한 사안에 초점을 맞춰 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관리시설 부지 확보가 그것이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 jhmoon86@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