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한 교수의 정보의료·디지털 사피엔스]웹3에 개발자보다 사용자가 필요한 이유

[김주한 교수의 정보의료·디지털 사피엔스]웹3에 개발자보다 사용자가 필요한 이유

코로나로 2년 넘게 중단됐던 블록체인 행사들이 서울에서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크립토 윈터'에도 불구하고 웹3, 프라이버시, 확장성 등 블록체인 산업의 미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대중적 관심이 큰 코인과 암호경제와 디파이, 대체불가토큰(NFT) 등도 빠지지 않았다. 그동안 괄목할 기술적 발전이 있었지만 개발자 중심의 알아듣기 어려운 전문용어와 약자들로 가득한 점은 아쉬웠다.

월드와이드웹의 창시자 팀 버너스 리는 미래의 인터넷이 의미론 수준으로 연계되고 스스로 지능화된 '시맨틱웹'을 꿈꿨고 이를 '웹 3.0'의 핵심요소로 보았다. 하지만 인공지능 시맨틱웹은 실현되지 못했고 기능적으로 풍부해진 HTML5와 모바일 앱 출현으로 더욱 강화된 웹 2.0 시대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더리움의 공동설립자 개빈 우드가 2014년에 제안했던 “블록체인 기반의 탈중앙화된 온라인 생태계”라는 '웹3' 개념은 2021년부터 급속히 확산됐다. 발음은 비슷하지만 '웹 3.0'과 '웹3'는 개념적으로 구분된다.

'웹3'는 탈중앙화, 확장성, 프라이버시 등의 큰 기대에도 불구하고 격렬한 논란에 휩싸였다. 트위터의 잭 도시와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벤처 투자가의 말장난'이나 '뻔한 마케팅 선전도구'라며 반대 입장에 섰고, 심지어 블록체인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는 알케미와 인퓨라, 가상화폐는 바이낸스와 메타마스크와 코인베이서 등 소수 회사 독점 체제로 현재의 웹 2.0보다 더 중앙화됐다는 비난도 이어졌다. 웹3는 차세대 웹의 플랫폼이 될 수 있을까? 필자의 눈엔 웹3는 다양한 서비스로 충만한 웹 2.0의 다음 세대라기보다 웹 1.0 출현 전, 컴퓨터 간 연결을 시도하던 옛 '인터넷' 시대의 모습으로 보인다. 블록체인은 아직 여러 '프로토콜'들의 개발단계에 머물러있다. '서비스 중심'의 웹3라기보다 연계와 통합을 추구하는 '인터넷 1.5 단계'라는 뜻이다. 수많은 블록체인 망과 코인들이 명멸하고 많은 프로토콜들과 확장기능들이 제안되지만 다양한 서비스와의 통합성과 대중화 방안은 아직 눈에 띄지 않아 이를 넘어서지 못하면 웹 2.0의 기능 중 하나로 남게 될 수 있다.

1991년 팀 버너스 리가 월드와이드웹을 창안하던 시절의 인터넷 모습으로 돌아가 보자. 인터넷은 패킷스위칭과 TCP/IP 프로토콜로 망 통합의 기술적 하부구조가 완성되고 있었지만 사용자 서비스는 이메일, 텔넷과 유즈넷, 파일 공유를 위한 FTP와 고퍼 프로토콜, 검색을 위한 아키 인덱스와 베로니카 및 저그헤드 검색엔진, IRC 채팅 등 무수한 서비스가 춘추전국시대를 이뤘고, 사용자는 모든 서비스를 각각 알아야 쓸 수 있었다. 월드와이드웹은 모든 인터넷 자원에 고유 주소 URL를 부여하고 하이퍼링크로 모든 자원을 '원 클릭'으로 연결하는 HTML의 문서 중심 통합이라는 '절대반지'로 모든 복잡성을 통합했다. 모든 개별 서비스들은 브라우저 속 하나의 웹으로 재탄생했다. 광통신 외에도 망 중립성 등 국제정책도 조율됐다. 1995년 엘 고어 부통령의 인터넷 상용화 정책은 웹 1.0의 완전한 성공을 약속했고 웹 2.0과 모바일 앱의 발전으로 지구촌 대중화가 완성됐다.

수많은 프로토콜과 가상화폐가 각축을 벌이는 현재의 블록체인에 필요한 것은 웹3가 아니라 월드와이드웹과 같은 서비스 통합과 대중화다. 우리에겐 멋진 성공사례가 있다. 한글이라는 '스크립팅 신기술'로 누구나 쉽게 익혀 날마다 '자신의 뜻'을 펼치게 한 훈민정음이다. 음운학이 거의 완성단계에 도달한 15세기, 전세계 스크립팅 기술을 모두 모으고 정리·탐구해 밝혀낸 음운의 대통합원리 위에 창제된 훈민정음은 '나랏말씀'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했고 널리 꽃피었다.

서울대 의대 정보의학 교수·정신과전문의 juha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