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329>리사란 컴퓨터 이야기

백크로님(backronym). 이것은 애크로님(acronym), 즉 두문자어의 일종이다. 후천성 면역 결핍증을 나타내는 AIDS는 이걸 나타내는 네 단어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것이다. 백크로님은 이것과 비슷한 듯 다르다.

애크로님이 어떤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들의 첫자를 따서 만든 것이라면 배그코님은 이미 존재하는 단어의 글자 하나하나에 이것을 첫 자로 하는 단어를 찾아서 재구성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의 이름이 우영우라고 했을 때 우·영·우로 시작하는 단어를 찾아 역설계하면 이것이 된다.

혁신을 비유하는 단어는 많다. 창의성이나 새로운 것은 혁신을 떠올리게 하고, 이것들은 혁신의 한 단면임에 분명하다. 물론 긍정만큼이나 부정적이고 혼란스런 단면도 있다. 예를 들어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 같은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한계로 정체성을 든다. 이 같은 예는 최고 혁신기업에서조차 흔히 보인다. 제록스를 한번 보자. 기업 역사에 이 같은 혁신기업을 찾아보긴 쉽지 않다. 제록스 공동창업자이자 전 회장인 찰스 매컬러(Charles McCullough)가 창시한 팰로앨토연구소는 수없이 많은 것을 발명했다. 컴퓨터 마우스, 이더넷, 초기형 워드프로세스 소프트웨어, 레이저 프린터의 첫 모습은 여기서 탄생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세평은 제록스가 이것들을 제품으로 만드는 데 실패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공교롭게 원래 대기업을 상대로 고가의 사무기기를 판매하던 이 기업의 실패에서 공통점을 보게 된다. 제록스는 개인용 복사기와 프린터 시장을 놓쳤고, 개인용컴퓨터도 마찬가지였다.

제록스 8010는 미래형 시스템이었지만 이걸 구축하려면 10만달러 가까이 들었다. 당시 비서 연봉이 1만2000달러 정도였고, 저가형 8비트 가정용 컴퓨터가 300달러이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공교롭게 이런 실패를 애플에서도 본다. 애플이 내놓은 리사(Lisa)는 분명 그래픽 인터페이스와 마우스를 채택한 최초의 개인용컴퓨터였지만 상업적으로 실패했다. 이유는 여럿 있었다. 무엇보다 1983년에 9995달러란 가격은 너무 비쌌다.

그리고 여기엔 다른 배경이 있었다. 애플은 당시 수익이 높아 보이던 기업시장에 탐이 났다. 포천 500대 기업은 이 정도 가격은 문제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애플은 이렇게 자신의 고객이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걸 잊을 때마다 실패를 맞봤다.

얼마 뒤 매킨토시 성공의 발판이 되기는 했지만 리사는 애플의 첫 실패작으로 남는다. 이후 애플은 평범한 소비자에게 초점을 맞춘 제품들로 오늘의 명성과 브랜드를 얻었고, 그 길 위에 여전히 남아 있는 듯 보인다.

애플이 리사를 내놓자 이 의미를 묻는 일이 늘었다. 얼마간 나중에 애플은 이것이 '로컬 통합 소프트웨어 아키텍처'(Locally Integrated Software Architecture)의 약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스티브 잡스의 첫째 딸 이름이 리사란 걸 아는 사람들은 이것이 역설계된 것이라며 수군댔다.

공교롭게 리사는 잡스가 결혼 전에 얻은 첫째 딸이었다. 잡스는 리사에게 바람직한 아버지는 못 된 것으로 전해진다. 오랜 기간 그 딸의 존재를 부정한 것으로 보인다.
1984년 1월 애플은 첫 매킨토시를 출시한다. 종종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구현한 최초의 개인용컴퓨터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앞에는 리사가 있었다. 잡스의 마음을 알 도리는 없지만 참으로 공교롭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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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