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이차전지는 해외 광물에 의존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한국은 이차전지 제조에 필요한 8대 광물 중 산화코발트·수산화코발트(83.3%·중국), 황산망간·황산코발트(77.6%·중국), 산화리튬·수산화리튬(81.2%·중국), 탄산리튬(89.3%·칠레), 황산니켈(59%·중국) 등 5개 품목에서 다른 나라들보다도 중국에 크게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핵심광물의 안정적 수급을 위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광물·소재만이 문제가 아니다. 장비 생산에 필요한 '프로그래머블 로직 컨트롤러(PLC)' 수급이 배터리 업계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상황이다.
PLC는 산업 장비를 제어하는 부품이다. PLC가 정보를 수신하고 장비에 적절한 지침을 내린다.
현재 PLC 납기는 최소 12개월 이상이다. 평시 6개월 걸리던 납기 기간과 비교해 2배 이상 늘었다.
PLC는 일본 미쓰비시와 독일 지멘스가 주요 공급사다. 그런데 배터리 장비 분야에서는 미쓰비시가 압도적이다. 국내 배터리 3사 장비의 99%가 미쓰비시 PLC 기반이라는 평가다.
PLC 부족은 전기차 배터리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 수요가 급증해서다. 배터리 장비 업계는 웃돈을 주고 PLC 추가 생산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납기일을 앞당겨도 2~3개월 정도 일찍 받을 수 있을 뿐이다.
배터리 장비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스마트폰 등 모바일 디바이스 시장이 커지면서 PLC 공급난이 왔었는데 최근에는 전기차에서도 같은 납기 지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쓰비시 입장에서는 PLC가 주력 사업이 아니어서 생산량 확대에 보수적이다. 설비 투자도 미미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새해에는 기존 대비 3배 이상 납기가 늦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테슬라·제너럴모터스(GM)·폭스바겐·현대자동차 등 주요 완성차 업체가 2025년까지 전기차를 대거 출시하면서 PLC 수요를 견인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전기차는 1450만대에 이르는데 앞으로 하이브리드보다 순수 전기차 수요가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PLC 심각한 공급 부족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안 마련도 쉽지 않다. 국내에서는 특히 미쓰비시 PLC 규격 의존도가 높아 공급망 다각화에 제한이 있다. 지멘스가 대안으로 힘을 받지 못하는 이유다.
국내 부품 업체 일부가 PLC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 생태계가 해외 제품 중심이라 시장 진입이 수월할지 미지수다. 제품 개발에 필요한 소프트웨어(SW) 등이 일본, 독일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슈나이더 등 다른 PLC 업체와 협력하려는 움직임도 있지만 안정적 공급망 확보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PLC뿐만 아니라 서보 모터, 터치 패널 등 배터리 장비 부품 수급도 빠듯하다.
[첨단 산업 장비용 부품 납기 기간]
김지웅기자 jw0316@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