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349〉가치 반대편의 가치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349〉가치 반대편의 가치

밸류(value). 우리말로 흔히 가치로 번역된다. 어느 사전은 이것에 값, 가치, 가격, 가치 기준, 참뜻 같은 다양한 뜻을 덧붙이기도 한다. 사실 이것은 라틴어 발레레(valere)와 프랑스어 발루아(valoir)에서 왔는데 프랑스어 발루아로 미루어 보면 밸류의 의미도 유추할 수 있다.

가장 흔하게는 가치가 있거나 없거나 적당하거나 그렇지 못할 때 쓰인다. 그리고 잘 맞는 것과 그렇지 않을 때, 좀 더 나은 선택이 무엇인지를 따질 때, 지금이 적절한 상태인지를 따질 때도 사용된다. 이렇게 따져 보면 우리도 이 단어를 이처럼 다양한 용도에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가치혁신이란 용어를 흔히 쓴다. 하지만 정작 이것이 무엇을 혁신한다는 것인지 모호한 구석이 있다. 가장 흔한 용도는 고객과 연결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무엇인가에서 고객이 향유하는 것이란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니 가치혁신이란 고객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고 앞의 질문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여기엔 두 가지 다른 지향이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혁신 아이콘답게 소니는 2006년 PRS(Portable Reader System)라는 휴대용 전자책을 출시한다. 소니는 PRS 고객에게 불만사항을 물었다. 디스플레이 크기와 선명도가 주된 불만이었다. 이렇게 소니는 더 얇고 가시성 높은 제품을 개발하게 된다.

반면에 아마존은 이북을 사용하지 않는 소비자를 조사했다. 왜 쓰지 않는 것일까. 결과는 '읽을거리가 없어서'였다. 아마존은 2007년 킨들(Kindle)을 출시하면서 소니보다 월등히 많은 서적을 인터넷 통해 쉽게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했다.

킨들은 첫 출시 6시간 만에 완판된다. 다른 전자책 고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만이 아니었다. 종이책만 보던 소비자를 전자책 시장의 고객으로 바꿀 수 있었다.

지금은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사례가 하나 있다. 1970년대는 백화점 전성기였다. 이 시기에 백화점은 미국 비식품 소매시장의 30%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금 와선 이들이 자신의 고객에 등한했냐고 물을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들은 고객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연구하고 조사했다.

그러나 자신의 고객이 아닌 시장의 70%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니 그래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비즈니스란 백화점에서 쇼핑할 여유가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가정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가 성년이 되었을 때 이 가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베이비붐 세대 가운데 교육받은 맞벌이 여성에게 쇼핑 장소를 결정하는 것은 돈이 아니었다. 시간이 주요인이었고, 이 세대의 여성들은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데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었다.

백화점은 자신의 고객만을 바라보았던 탓에 이러한 변화를 인지하지 못했고, 이것을 깨달았을 무렵 비즈니스 환경은 이미 말라버린 후였다.

내 고객의 가치를 바라보는 건 지극히 당연한 선택이다. 하지만 그 바깥에 존재하는 가치의 공간들이 있다. 그래서 어느 경영학자는 한 가지를 생각해 보라고 한다. “기업엔 고객 중심이 분명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백화점이 어렵게 깨달았듯 시장 중심이기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