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칼럼]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플랫폼 칼럼]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현재까지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공모철회, 심사철회, 상장연기 등이 속출하고 있다. 최근 6개월 공모철회와 심사철회 기업이 20여개사나 된다.

연초 컬리가 상장을 철회한 후 SK그룹 e커머스 플랫폼기업 11번가와 우리나라 첫 번째 인터넷은행인 케이뱅크도 IPO 추진을 중단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도 11번가의 모회사인 SK스퀘어 산하 원스토어와 SK쉴더스가 상장을 철회했지만 11번가는 사정이 다르다. 2018년에 국민연금, 새마을금고, H&Q코리아로부터 약 2조7000억원의 기업가치로 5000억원의 투자를 받은 11번가는 일정 기업가치 이상으로 2023년 9월까지 상장하기로 약속했다. 만약 약정된 조건으로 상장하지 못하면 투자자가 대주주인 SK스퀘어의 지분도 3자에게 처분해도 좋다는 동반매도청구권(Drag-along) 조항을 포함시켰다. 이렇게 되면 SK는 경영권을 잃을 수도 있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통상적으로 예비심사부터 최종 상장까지 약 4개월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11번가는 늦어도 1분기 안으로는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심 청구서를 제출해야만 계약을 이행할 수 있다. 또한 투자자들과 약속한 최소수익률 3.5%를 충족하려면 IPO에서 적어도 3조2000억원 이상의 기업가치는 돼야 하고, 거기에 상장할 때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20~30%정도의 할인율을 감안하면 최소한 4조~5조원 정도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2020년부터 계속 대규모 영업적자가 이어지고 있어 상장을 진행해도 FI(재무적 투자자)의 투자때보다 오히려 기업가치가 현저하게 낮아졌을 거란 평가로 부정적 기류가 우세하다.

케이뱅크도 지난번 유상증자에서 약 2조4500억원의 기업가치로 글로벌 투자를 유치하면서 2023년까지 IPO가 무산될 경우 FI 보호 장치로 동반매도청구권 조항을 포함시켰다. 또 지난해 말 상장 추진을 중단한 '밀리의서재'와 2018년 FI인 어피너티컨소시엄으로부터 1조원 투자를 유치한 SSG닷컴도 약정에 따라 2024년까지 IPO를 마무리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랜우드 PE가 4141억원을 투자한 CJ올리브영 역시 기업가치 2조원 이상으로, 2023년 말까지 상장해야 한다.

이들 기업뿐만 아니라 이미 엑시트에 성공한 쿠팡, 우아한형제들에도 같은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현재 FI의 대규모 투자를 받은 거의 모든 유니콘 기업들이 정해진 기간에 반드시 엑시트를 해야 한다. 만약에 그렇지 못하면 대주주가 FI의 지분을 되 사주든가(Call-option) 아니면 이들 회사는 M&A 시장에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자자와의 분쟁과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는 기업들이 많아지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은 오랫동안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의미 있는 패턴을 발견했다. 이들은 평균 400여개 스타트업을 냉철하게 심사한 후 1개 회사에 투자를 결정한다. 하지만 이런 신중함이 무색하게도 투자 성공률은 그리 높지 않다. 대략 10개의 회사에 투자하면 그 가운데 5개사는 파산하고, 4개사는 좀비기업이 된다. 그리고 단 하나의 회사가 매우 성공적으로 엑시트한다. 이런 반복적 패턴을 '5:4:1 법칙'이라고 한다. 한 개의 투자가 나머지 투자의 실패를 모두 합한 것보다 더 큰 수익을 내는, 이른바 '대박' 게임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장이 급변하면서 대박을 내야하는 회사가 갑자기 사라질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야말로 FI들에게는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 관문인 IPO 문턱에서 문제가 생기다 보니 피해가 훨씬 더 심각하다. 그렇다고 기업가치가 하락한 채로 막무가내로 상장할 수도, 기약 없이 시장 회복을 기다리기도 답답한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담보 없이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는 FI는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법률적인 자문을 충분히 구하며 사전에 투자계약서를 철저히 작성한다. 하지만 몇 년에 한 번 정도 투자를 유치하는 기업은 투자계약서에 대한 이해도도 부족하고, 투자가 급하기 때문에 대충 설명을 듣고 투자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상황에 따라 투자자가 회사를 임의로 매각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다.

드래그얼롱은 일정기간내에 사전 합의된 기업가치로 엑시트를 못하면 FI가 자신들의 지분은 물론 투자받은 기업의 대주주가 보유한 지분까지도 3자에게 매각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소수 주주가 동반매각청구권을 행사해 대주주 지분까지 함께 매도하면 주식을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은 높은 가격으로 매각해 투자금을 쉽게 회수할 수 있다. 비상장기업에 투자한 FI의 경우 드래그얼롱은 효과적인 엑시트 수단이 된다. 하지만 기업의 경영권은 3자에게 넘어가게 된다. 정해진 기한 내에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벤처캐피털이나 사모펀드와 같은 FI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조항이다.

일반적으로 투자로 말미암아 분쟁이 생기면 언더독(Underdog) 효과가 발생하며, 대부분 투자자를 부정적 프레임으로 해석한다. 그렇지만 수 년 전 투자자와 투자대상기업 간 수많은 논의와 협상의 결과가 계약서에 녹아 들어갔고, 당시에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이 아니라 양쪽의 이해관계가 맞았기 때문에 투자계약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그 계약으로 말미암아 갈등이 생긴다면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리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게 아니라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 다만 이해를 못했거나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기 싫은 상황에 놓여 있을 뿐이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항상 트레이드오프가 있다. 오늘도 어려운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안트러프러너를 응원한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hsryou6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