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Fun한 기술경영]〈353〉가설의 역설 속으로

[박재민 교수의 Fun한 기술경영]〈353〉가설의 역설 속으로

하이포서시스(hypothesis). 우리말로 가설이나 가정으로 쓰인다. 그리스어에서 히포(hypo)는 아래, 테시스(thesis)는 명제·진술·의견을 뜻한다. 이 둘을 붙여 풀면 '아래에 놓인 또는 전제된 명제'란 의미가 된다. 달리 말해 앞으로 진행될 조사나 논쟁을 위한 출발점이 된 기본 가정 또는 전제를 나타낸다. 이 그리스어의 원래 의미는 수 세기 동안 크게 변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비즈니스란 무엇일까. 누군가는 시장, 경쟁우위, 비즈니스모델, 전략, 기업 문화, 인재를 떠올릴 것이다. 물론 이것 모두 정답이겠지만 다른 답도 있다. 바로 가설의 묶음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표현이 비즈니스란 실재(實在)를 괜한 이론과 논리 틀에 욱여넣은 것 같지만 이것이 실제(實際)라는 걸 증명하는 그럴듯한 사례도 꽤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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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갈 필요 없이 현재진행형인 것도 있다. 주변을 한번 살펴보라. 지금 많은 기업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라고 불리는 것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 하지만 이것에 명확한 투자수익률(ROI) 수치가 있는 기업은 별로 없다.

이 천문학적 투자를 떠받치고 있는 근거는 대개 디지털 기술이나 디지타이제이션(digitization) 또는 디지털라이제이션(digitalization)이 기업에 더 나은 효율성, 더 나은 고객 경험, 데이터 기반 통찰력, 민첩하고 유연한 경영, 새로운 제품·서비스와 시장을 제공할 것이라는 가설이다.

물론 다른 사례도 있다. 심지어 산업사를 바꾸기도 했다. 제너럴모터스(GM)에는 우리 모두 한 번쯤 들어 본 시장과 고객에 대한 잘 짜인 가정이 있었다. 자동차 시장이 동질의 소비가치가 있는 안정적인 소득 그룹으로 구성돼 있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매번 상위 트림으로 업그레이드하려 한다. 이때 높은 중고차 가격은 이 과정이 순조롭게 하는 기반이 된다.

그러니 모델의 잦은 변경이나 라디칼(radical)한 페이스 리프트는 재판매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 이 비즈니스 가설에 GM이 찾은 해답은 매년 최소한의 변경으로 동일 모델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각 디비전은 소득 세그먼트에 맞추되 각 브랜드의 최고가 모델은 그 상위 브랜드의 가장 낮은 저렴한 모델과 겹치도록 배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 들어 '라이프스타일'이 트렌드가 되면서 이 가정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소득은 구매 결정에서 유일한 요인이 아니라 많은 요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70년 동안 마법처럼 작동하던 GM의 가설은 더 이상 '참'(true)이 아니었다.

우리는 종종 실패를 되짚어 볼 때 뭔가 잘못된 원인을 집기도 하다. 그러나 종종 '시스템 실패'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경우에 맞닥뜨리기도 한다. 누군가 일을 잘못 처리한 게 아님에도 예상치 못한 실패를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 자책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어쩌면 이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비즈니스를 모두 살아 있고 변화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 모든 생명체가 퇴행성 질환을 앓게 되는 것처럼 비즈니스 기반 이론과 가설도 진부화하기 마련이다.

의학이 말해 주는 한 가지 진리는 퇴행성 질환은 자연 치료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즈니스도 다를 것 없다. 그러니 이런 때 이 가설의 역설을 한번 떠올려 봄 직하다. 물론 이것이 당신을 폭풍 속으로 이끌고 가겠지만 당신은 이것마저 두려워하지 않을 황새치잡이 배의 선장이지 않은가.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