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따라한다고?"…학습 정보 공유하는 '똑똑' 호박벌

사회적 학습 능력을 갖춘 호박벌을 표현한 일러스트. 사진=Diego Perez-Lopez/PLOS
사회적 학습 능력을 갖춘 호박벌을 표현한 일러스트. 사진=Diego Perez-Lopez/PLOS

할머니가 자신만의 레시피를 손주들에게 알려주는 것처럼 호박벌도 경험 많은 개체가 지식을 전파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에서 설탕물이 든 퍼즐을 푸는 방법을 먼저 배운 시범 조교 벌 행동이 무리에 번지는 모습이 관찰된 것이다.

7일(현지시간) 미국 공영라디오 NPR에 따르면, 영국 '퀸 메리 런던대학교' 연구진은 호박벌이 사회적 학습 능력을 갖춰 먹이활동 과정에서 특정 행동이 군집 내로 금세 확산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개방형 정보열람 학술지 ‘플로스 생물학’(PLOS Biology) 최신호(7일자)에 실렸다.

영장류와 같은 사회적 동물은 다른 구성원의 행동을 보고 학습할 수 있으며, 벌들도 이런 학습 능력이 있다는 이전 연구 결과가 있었다. 하지만 군집 내에서 새로운 행동이 어떻게 확산하는지는 불투명했다.

감각·행동생태학 교수 라즈 치트카가 이끄는 연구팀은 이를 규명하기 위해 연구에 나섰다.

실험은 6~12일에 걸쳐 총 6개 호박벌 군집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사용된 것은 노즈워크 장난감과 비슷하게 생긴 퍼즐 장난감. 벌들은 퍼즐의 빨간색 탭을 시계방향으로 밀거나 파란색 탭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미는 두 가지의 방법으로 이당류인 ‘수크로스’에 접근할 수 있다.

파란색 탭을 밀어 수크로스에 도달하는 호박벌. 사진=Diego Perez-Lopez/PLOS
파란색 탭을 밀어 수크로스에 도달하는 호박벌. 사진=Diego Perez-Lopez/PLOS

논문 제1저자인 앨리스 브리지스 박사는 먼저 집단별로 ‘조교’ 역할의 호박벌을 뽑아 한 방법만을 훈련시켰다. 이 과정에서 브리지스 박사는 벌에 수차례 쏘여 병원에 가기도 했으나, 다행히 훈련에는 성공했다.

빨간색 탭을 밀도록 훈련된 호박벌을 보고 학습한 집단은 빨간색 탭만을 밀어 퍼즐을 풀었다. 사진=Diego Perez-Lopez/PLOS
빨간색 탭을 밀도록 훈련된 호박벌을 보고 학습한 집단은 빨간색 탭만을 밀어 퍼즐을 풀었다. 사진=Diego Perez-Lopez/PLOS

벌마다 빨간색 탭과 파란색 탭을 미는 방법 중 한 가지 방법만을 훈련시켰는데, 놀라운 것은 각 벌이 속한 군집은 조교가 배운 방법으로만 수크로스에 접근했다는 점이다. 빨간색 탭을 미는 조교 벌이 속한 군집은 빨간색 탭을 미는 방법으로 먹이는 찾았다.

파란색 탭도 동일한 결과가 도출됐으며, 평균 98.6%가 교육 방법에 따라 먹이를 찾았다. 이는 시범 벌이 가르쳐준 것과 다른 탭을 선택해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뒤에도 이어졌다.

시범을 보이는 조교 벌이 없는 군집에서 일부가 상자를 여는 데 성공했지만, 성공률이 매우 낮았다. 조교가 있는 군집에서는 하루 평균 28개 퍼즐을 열었지만, 조교가 없는 비교 군집에서는 하루 1개 퍼즐을 여는데 그쳤다.

각각 빨간색이나 파란색 탭을 밀어 수크로스를 얻게 훈련된 호박벌을 같은 군집에 넣고 시범을 보이면 초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혼용되다가 궁극적으로 하나의 방법으로 수렴되는 모습을 보였다.

연구팀은 이런 결과는 영장류나 조류에서 나타난 것과 마찬가지로 호박벌 사이에서도 사회적 학습이 새로운 행동의 전파에 중요하다는 강력한 증거를 제공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브리지스 박사는 "작은 뇌를 가진 무척추동물인 호박벌에서 얻은 이런 결과는 영장류와 조류 등에서 문화 형성 능력을 입증하는 데 이용돼 온 비슷한 실험 결과를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치트카 교수는 "벌이 다른 벌의 행동을 보고 배워 행동 습관을 형성한다는 점은 많은 사람이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똑똑하다는 증거를 추가하는 것"이라며 “이번 연구는 새로운 혁신이 군집 내에서 소셜미디어 밈처럼 확산할 수 있어 호박벌이 완전히 새로운 환경적 도전에 수세대에 걸친 진화적 변화보다 훨씬 더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8자 춤(waggle dance)을 추는 꿀벌과 따라 추는 꿀벌들. 사진=Dong Shihao
8자 춤(waggle dance)을 추는 꿀벌과 따라 추는 꿀벌들. 사진=Dong Shihao

한편, 꿀벌도 사회적 학습을 통해 춤을 배우고 다음 세대로 전수한다는 연구 결과가 비슷한 시기 발표돼 포유류와 조류 등으로 국한됐던 사회적 학습과 문화가 곤충 영역으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꿀벌은 봉군(벌 떼)에서 8자 형태로 원을 그리며 배 부위를 흔드는 춤을 추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8자 춤’(waggle dance)은 춤의 각도와 길이에 밀원(벌이 꿀을 빨아오는 원천) 식물의 방향, 거리, 질 등 정보가 담겨 있어 생존과 직결된다.
꿀벌은 태어나서 일정한 시기에 도달하면 팔자춤을 추지만, 항상 경험 많은 벌이 하는 것을 본 뒤에야 첫 춤을 시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배움의 기회가 적은 꿀벌은 부화 1~2주 만에 본능적으로 어색한 8자춤을 추기 시작했으나 무질서했으며, 이에 담긴 거리와 방향 등의 정보도 오류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경험 많은 벌이 8자춤을 추는 것을 볼 수 있었던 집단의 젊은 벌들은 정확도가 높은 8자춤을 춘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팀은 인간이 언어발달 초기에 언어를 배우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꿀벌도 생후 38일 이전에 사회적 신호를 습득하고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자신문인터넷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