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한 교수의 정보의료·디지털 사피엔스]비대면 의료의 위기

[김주한 교수의 정보의료·디지털 사피엔스]비대면 의료의 위기

코로나19로 활성화되고 있던 비대면 진료 업체들이 정부의 초진 제외, 재진 중심 비대면 진료 제도화 방침에 위기감을 느끼고 우려를 담은 성명서를 전달했다. 초진이 금지되면 환자의 빠른 유입, 즉 기업의 빠른 성장은 어려워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한편 의학적으로는 재진 허용만으로도 큰 발전이다. 단 한 번의 진료로 마무리되는 경우라면 그리 큰 병은 아니다. 의학적으로는 재진의 의미가 더 크다. 원격진료가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인정됐다.

1996년 서울대병원 원격치매센터가 개소됐다. 당시 인터넷은 너무 느려서 고가의 T1 전용선을 깔고 전국 치매요양센터와 노인복지회관을 연결했다. 큰 성공이었다. 환자도 의료진도 만족한 혁신이었다. 원격으로는 어려운 환자와의 눈 맞추기 같은 기술적 난제 해결에 매진했다. 그러나 장비는 비쌌고, 통신료만 매달 수백만원이었다. 대량 보급까지는 머나먼 길이었다. 2000년대 들어와 빨라진 인터넷망으로 원격의료를 시도했다. 당시 법무부와 서울대병원 협력으로 도입한 교도소와의 원격의료 시행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해양경찰선을 인공위성망으로 연결한 섬마을 진료도 큰 성공을 거뒀다. 군부대에도 원격의료가 보급됐다. 그러나 각 가정에까지 연결하기엔 여전히 비용이 너무 컸다.

2010년 스마트폰 보급으로 원격의료가 다시 이슈화되자 한 기자가 전화를 해 왔다. “서울대병원에선 의사들에게 스마트폰을 지급한다면서요?” 의료진에 대한 스마트폰 지급도 9시 뉴스거리이던 때였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의사와 병원 간 연결 목적일 뿐 환자 진료와는 별 상관이 없었다. 다른 기자와의 인터뷰에선 재진 허용만으로도 큰 효과가 있다고 했다. 진단에도 변화가 없고 처방 내용도 동일해서 원 담당의사가 동일 반복처방전을 원격으로 전송하는 것은 국제표준 진료행위에 해당할 뿐이었다. 외래 방문 건수는 연 7억건을 넘어섰다. 병원 방문에 소비되는 2시간에 최저임금만 곱해도 20조원다. 불필요한 재진 방문을 10%만 줄여도 2조원의 사회적 비용과 환자 시간이 절약된다. 그러나 환자들이 나누어서 낼 비용이라 그런 건지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2020년 코로나19는 모든 것을 바꾸었다. 장애물이던 통신 인프라, 투자비용, 기존 의료방식에 대한 집착 문제는 해소됐다. 원격수업으로 어린 학생들도 영상회의 달인이 되었다. 이제 학생들은 방송통신대 교수의 강의가 명문대 교수의 강의보다 훨씬 좋다는 것을 잘 안다. 지난해 서울대 의대는 초유의 원격강의를 했다. 평가 결과는 극명히 갈렸다. 교수들은 원격교육은 강의의 질과 집중도가 떨어진다며 나쁜 평점을 주었고, 의대생들은 오히려 더 좋았다며 높은 평점을 주었다. 정부는 '비대면'으로 한시적 원격진료와 처방약 원격배송을 허용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서 정부는 한시적 비대면 진료의 제도화 필요성을 느낀 듯하다. 그러나 초진 금지, 재진 중심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재진 중 반복처방만이라도 허용하자던 내 주장보다는 진일보한 정책이다. 한편 비대면 진료 업체들은 플랫폼의 빠른 성장을 걱정한다. 많은 자본이 투자됐고, 자본은 빠른 회수를 원한다.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탈모약 배송'의 편의성 증진보다 더 가치있는 진료의 질 향상을 위한 기술 개발엔 좀 소홀했다. 기술적 발전이 기존 배송망 활용과 예약, 평가, 지불 플랫폼 정도이고 시장 선점 경쟁에만 그친다면 사회적 동의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자칫 무분별한 의료 남용과 의료비 증가라는 사회적 우려만 키울 수 있다. 단순한 '중개 플랫폼 선점'보다 진정으로 환자 건강 향상에 기여하는 비대면 기술 개발로 경쟁해야 하는 이유다.

서울대 의대 정보의학 교수·정신과전문의 juha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