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칼럼]재혁신으로 주목받는 ISM 주파수 대역

이문규 서울시립대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
이문규 서울시립대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

커피 기업 네슬레는 1년에 20%씩 기존 제품을 혁신하고, 혁신을 거친 제품도 50%까지 재혁신(리노베이션)하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네슬레는 철저히 기존 시장에서 혁신 요소를 끌어낸다는 점에서 정보통신기술(ICT)에서 흔히 진행되는 전면적 혁신과는 결이 다르다.

지금의 무선통신과 레이다를 가능하게 한 현대적 개념의 전파는 1865년 영국 물학자 제임스 맥스웰에 의해 완전한 수학적 형태로 기술됐다. 이후 헤르츠, 마르코니, 테슬라 등을 거치며 상용화 시대가 열렸다. 종이가 아닌 전기로 정보를 전달하는 전송 기술은 방송을 거쳐 1980년 이후 이동통신으로 옮겨지며 5세대(5G) 이동통신까지 숨가쁘게 달려왔다. 특히 3G 이후 통신은 단순 정보 전송을 넘어 통신 기반 플랫폼 산업이 급성장하는 등 통신융합 생태계로 변모하며 발전하고 있다.

5G 시장이 초기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도 4G 통신 융합 생태계와 차별화할 수 있는 자율차, 메타버스와 같은 킬러 애플리케이션(앱) 시장이 기대만큼 성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내 무선통신 기반 전파산업 업황이 어려워지는 것은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이통용 무선주파수(RF) 전파기술이 성숙단계로 들어가고 있고, 전파 신산업이라 할 수 있는 밀리미터파 시장은 수요가 미진하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서는 1947년 전파를 무선통신 이외에 산업·과학·의료(ISM) 분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위해 ISM 주파수 대역을 지정했다. 국가별로 자국의 특성에 맞게 ISM 대역을 운영한다. 국내는 비면허 대역으로 관리하고 있다.

일반인에게 잘 알려진 전자레인지(마이크로파 오븐) 외 ISM 대역 응용은 다양하다. RF 고속 가열, 살균, 플라스마 생성, 전파 투열요법, 마이크로파 수술칼, RF 용접, RF 절단, 마이크로파 화학 촉매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된다. 최근 인류 환경 문제인 플라스틱 처리에서도 전파 에너지를 이용한 마이크로파 열분해가 적용되고 있다.

국립전파연구원 전파인증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 전파 분야 기업의 약 80%가 비면허 대역을 활용하고 있다. 산업 생태계에는 획일적 시장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관련된 다양한 응용 기술과 산업이 있어야 한다. 즉 중소·중견 기업이 자생할 수 있는 다양한 산업이 있어야 생태계가 건강하다고 볼 수 있는데 ISM 대역이 이러한 요건을 충족시키고 있다.

전파산업의 정체기를 맞고 있는 지금 전파 신산업 발굴을 위해 ISM 대역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전파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응용은 직접 가열하는 다른 방법과 기능면에서 완전히 차별화한 특성이 있다.

전파 가열은 매우 넓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빠르게 가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목표물에만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다. 또한 전파는 강력한 전자기력을 갖는 에너지파로, 단순한 열 전달이 아니라 이온화(플라스마)를 이용한 가속 화학 반응 등 기존 가열 반응과는 기능 면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다.

최근 반도체 기반 마이크로파 고출력 기술이 시장에 등장하고 있다. 기존 진공관 기반의 산업용 마그네트론 기술은 1960년대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전파 에너지 산업을 이끌고 있다. 마그네트론은 정밀한 전력과 위상 제어가 어려워 전력 결합이나 빔성형(포밍) 등 기능 확장에 어려움이 많다. 이에 반해 최근 반도체 기반 마이크로파 소스는 전력과 위상을 소프트웨어(SW)로 제어할 수 있어 그동안의 전파 에너지 응용 분야에서 기술적 한계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는 등 산업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무어 법칙으로 대변되는 그동안의 반도체 기술 발전 속도는 실로 눈부시다. 시장에서는 마그네트론을 대치할 반도체 기반 소스의 가격이 5000달러 근처가 되는 2028년에 사업화가 가능하고, 1000달러 수준으로 가격이 내려오는 2030년이 되면 대중화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자동차 산업에 비유하면 기계식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를 거쳐 SW 기반 자율차로 변신하는 혁신으로 볼 수 있다.

기술 패러다임 변화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적기에 전문 인재를 양성하고 선제적으로 원천·핵심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 지금까지 대학에서 전파인력은 통신과 레이다에 집중해서 양성됐다. 전파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경우 전자파·물질(매질) 간 상호 작용이 매우 복잡한 다중물리와 시변 특성으로 난제로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컴퓨팅 능력 향상으로 이러한 문제가 점진적으로 해결되고 있다. 노벨상이 나온 X선 분광학이나 자기공명영상(MRI) 분야와 유사하게 전파 에너지와 매질 사이 상호 작용에서도 혁신적 발명품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문규 서울시립대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한국전자파학회 상임이사 mqlee@uos.ac.kr